교사로 지내다 보면 코흘리개 반 제자들과 1년에 한 번에서 두 번은 현장체험학습(소풍)을 간다. 소풍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도시락! 햄, 계란, 두부 등 여러 가지 메뉴로 중무장한 도시락은 아이들의 포크와 젓가락에 순식간에 무장해제 된다. 왁자지껄 웃음소리와 함께. 어느새 삼십 대에 접어든 나이지만 나도 행복한 도시락의 추억이 있었을까 가만가만 기억을 더듬어본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급식을 했던 것 같다.(3학년 때인가?) 아무튼 학교에 도시락을 싸들고 간 기억은 소풍 때, 그리고 가끔 학교 급식을 안 할 때 외에는 그리 많지는 않다. 그래서 도시락에 얽힌 즐거운 추억이라고 할 만한 게 그다지 없다. 그 와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건 4학년 겨울방학 과학캠프 때이다. (4학년이었던 것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좋았나 보다.)
방학하기 얼마 전 담임 선생님께서는 겨울방학 중 과학캠프에 참여할 사람을 물어보셨고 그때 지원자가 많자 반에서 우등생이던 나를 뽑아주셨다. 그리하여 3일간의 과학 캠프에 참여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과학실험이 주 일정이었는데 지금 기억나는 건 풍선을 머리카락에 맞대고 정전기를 일으킨 것뿐이다. 캠프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모두들 일제히 손을 머리에 얹고 풍선을 비벼대던 그 모습을 지금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나는 건 중간에 도시락을 까먹었던 그 시간, 어찌나 꿀맛 같던지 아직도 그 감각을 잊을 수가 없다. 내 입안에서 환상적인 폭죽이 가득히 터지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중요하지 않은 사건은 기억 속에서 점차 지워지기 마련인데 그때 그 맛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심지어 옆에 누가 있었는지, 도시락 반찬은 무엇이었는지 어느 선생님한테 배웠는지는 기억 안 나는데도...
언젠가 소개팅 남자에게 등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등산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가 힘차게 산에 오른 뒤 먹는 김밥과 물이 꿀맛이라고. 그때 나는 매우 공감하면서 들었더랬다. 맞아 맞아! 고생 끝에 먹는 찬은 최고의 맛이죠하며 말이다.
급식에 대한 기억만 가득한 가운데 이렇게 한 조각 도시락의 추억도 함께 있다는 게 다행이다. 나는 아직 미혼이지만 결혼한다면 아이에게 이런 도시락의 추억도 한번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매일 같은 날이 희미하게 스쳐갈 급식이 아니라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한 후에 먹는 달콤한 도시락의 추억을 말이다. 고진감래라는 사자성어가 어울릴 만한 그런 추억...
2019년에 쓴 글입니다.
Image by Freepik and 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