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미의 <중년 남미새>라는 영상이 화제다. 아들만 키우는 50대 중년 여성이 다른 여자들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대사와 행동에서 드러난다. 이 영상과 밑에 댓글을 보면 우리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나도 가끔 생각한 적이 있다. 아들 가진 일부 엄마들이 다른 여자들을 존중할 수 있게 키우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진 않을까 하고.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구호가 펼쳐지던 시대에 태어난 나조차도 주변에서 남자형제와 차별받고 컸다는 사례를 부지기수로 봤다.
그런데 더 충격인 건, 그렇게 차별받고 큰 여자들이 다른 여자들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받은 대우 그대로 다른 여자들을 차별하는 의식을 내면화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남학생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학생들을 상대로 치마를 짧게 입었다든지, 먼저 꼬리 쳤다든지 하는 말들로 여학생들 책임으로 돌리고 욕설과 조롱도 서슴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혐오의 대상이 된 여학생들만 두 번 세 번 상처받고 무너진다.
나는 열아홉 살 때부터 따돌림을 당했다. 폭력을 겪었고, 성추행과 성희롱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한 남자 선배는 아무렇지 않게 “너 임신한 거 아니냐?”는 말을 던졌다. 나는 내가 왜 그런 무례한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때 알게 됐다. 이 사회에는 다른 이를 존중하지 못한 채 혐오를 너무 쉽게 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더 고통스러웠던 건 그 이후였다. 피해를 말한 나를 연민이 아니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고, 조용히 멀어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때 나는, 이 사회가 폭력보다 침묵과 외면으로 사람을 더 깊이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정말 멋진 사람은 남자와 여자를 떠나서 그 누구도 대상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혐오의 시선 안에는 뿌리 깊은 차별과 편견이 담겨있다. 그런 사람들은 겉으로는 잘 생활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내면이 황폐해진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그런 사람들은 피하고 싶다.
조금 어리석을 수 있다. 어리석음의 뿌리는 무지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소설이 유행했었다. 무지라는 벽 뒤에 숨어있지 말고,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혐오가 뿌리 깊은 가를 성찰하는 태도를 갖고 하나하나 부수려는 생각과 마인드를 가져야겠다. 그렇다면, 개그맨이 올린 영상 하나에 조롱과 풍자니, 갑론을박이 벌어지기 전에, 먼저 자성의 목소리가 퍼져 나왔을 것이다. 존중하지 않는 세계에 굳이 나를 증명하고 싶지 않다. 존중 없는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다. 나는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들과만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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