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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성 작가의 <최소한의 삼국지>를 읽고 있다. 나관중이 쓴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쓰인 책이기에 정사하고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꽤 흥미진진하게 한 권으로 유비, 조조, 손권이 주축이 되어 전개되는 삼국지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삼국지 이야기를 읽다 보면 현실 인간관계에 대입해 많은 것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나는 그중 조조와 여백사 사건이 아주 인상 깊었다.
조조는 권력을 장악해 폭정을 일삼는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도망친다. 그는 아버지의 지인인 여백사의 집으로 숨어든다. 하지만 조조는 자신을 극진히 대접하려던 여백사의 가족 여덟 명을 모조리 칼로 베어 죽이고 만다. 그는 몰래 칼 가는 소리와 ‘죽이자’는 말을 듣고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오해했다. 하지만 집안에 있던 가족들을 모두 죽이고 난 뒤에야 돼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사실은 돼지를 잡아 조조를 먹이려던 것이었다. 그는 한순간의 오해로 여백사의 가족을 모조리 죽인 것이다. 뒤이어 집으로 돌아오던 여백사마저 후환이 두려워 또다시 무참히 살해한다. 그때 조조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가 천하를 버릴지라도, 천하가 나를 버리게 하지는 않겠다.”
참으로 잔혹하고 냉혈한이 아닐 수 없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열아홉 살 대학 새내기의 장밋빛 캠퍼스 라이프를 펼쳐보기도 전에, 새로 사귄 대학 동기들과 선배들은 한순간에 나를 꼬투리 잡아서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고 왕따를 시키고 4년 동안 고립시켰다. 그 후에 나는 어린 시절이니깐(그럼에도 나와 띠동갑까지 차이 나는 등 내가 제일 어린 막내였다.) 이해하려고 해 보고 그들을 편들어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그들을 편들어준 것마저 이용해서 또다시 나를 음해하고 다시 한번 매장시켰다. 그때 깨달았다. 사람의 악한 본성이란 게 정말로 있으며 쉽게 용서한다는 것은 순진할 발상이며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이후로 나는 웬만하면 새로 누군가를 사귀는 것을 꺼린다. 알고 지낸 지인도 인격에 흠결이 보이면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사람을 잘 만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안 그러면 조조와 여백사 사건처럼 일가족이 몰살될 정도는 아니더라도 심각한 해를 당할 수도 있다. 실제로 나로 인해 그 여파로 내 동생마저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것이 나의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당하고 있을 때는 몰랐다. 그러나 꽤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하나하나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것처럼 희미했던 장면이 서서히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엔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 회관 앞에는 ‘범죄 없는 마을’이란 비석도 세워져 있다. 부유한 동네가 아니어서 술주정뱅이도 있었고 사생활이 복잡한 사람도 있었지만, 누군가를 해코지하려는 악한 심성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상급 학교로 진학할 때마다 나는 세상의 냉혹함을 마주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상처 입고 고슴도치처럼 날 선 가시를 세워야만 했다.
여전히 트라우마로 고생하고 세상에 대한 경계심이 가득하지만, 그래서 새로운 사람 사귀는데 극도로 소극적이지만, 정말로 좋은 사람들하고 연결되고 싶은 마음은 있다. 그리고 그건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을 다니며 세상에 대한 견문을 쌓는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해는 두려움을 줄여준다. 예전엔 쉽게 마음을 열고 누구와도 서슴없이 친해지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돌다리도 두드려보듯이 조심스레 마음을 열어간다. 서서히 내 주변을 좋은 사람들로 새롭게 다시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