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초월이라는 이름의 고귀함

by 루비


삶에는 다양한 쾌락이 있다. 매슬로우 욕구 5단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욕구는 생존을 위한 생리적 욕구에서 출발해 안전, 소속, 존경, 자아실현으로 점점 확장해 나간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적 조건 속에서 3단계 욕구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그보다 높은 4단계나 5단계까지 나아가는 사람은 드물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을 만날 때 이 매슬로우 욕구가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의 경험과 한계라는 색안경을 끼고 타인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높은 단계의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자연히 어울릴 사람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결핍이 아니라 방향의 차이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결과다.


소설 <갈매기의 꿈>에서 조나단은 먹고사는 것만 관심 있는 갈매기들 사이에서 더 높이 더 멀리 날기 위해 애쓰다가 추방당다. 하지만 후에 돌아와 변화를 원하는 갈매기들에게 비행의 의미를 전한다. 비록 지금은 두려움과 관습에 묶인 이들에 의해 쫓겨나고 고립될지라도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노력하면 존경과 감사가 선물처럼 주어진다. 이 이야기는 자기 초월을 향한 길이 종종 외로움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자신의 가치와 방향과 맞지 않는 관계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 모든 관계를 붙잡는 것이 성숙이 아니라, 어떤 관계를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 오히려 성장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니체가 말한 ‘군중으로부터의 거리두기’와도 맞닿아 있다. 니체는 굳이 억지로 무리 지으려 애쓰기보다 군중에서 한 발짝 벗어나길 권했다. 군중 속에 오래 머물수록 개인의 고유한 목소리는 희미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에서 타인을 바라보며 결국은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고 남게 된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하며 단순한 쾌락을 넘어 지적·정신적 성숙을 향한 더 깊은 만족을 추구하는 일이다. 그것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


고귀한 삶이란 타인을 깎아내려 얻는 우월감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조용한 노력 속에서 만들어진다. 군중과 거리를 두는 것은 고립이 아니라, 더 넓은 시야를 얻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결국 인간을 고귀하게 만드는 것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어제의 자신을 넘어서는 지속적인 성장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깊고 넓은 사고의 폭을 가진 사람은 조직이나 파벌에 속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 같은 사람은 어느 사이엔가 조직과 당파의 이해를 초월하여 한 차원 높은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조직과 파벌이라는 것은 고만고만한 도토리의 집합체, 작은 물고기의 무리와도 같아서 사고방식까지도 보통 사람의 틀 안에 가두어 버린다. 그러므로 사고방식의 차이로 조직에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하여 자신만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그것은 조직이라는 좁은 세계를 초월한 넓은 차원에 이르렀기 때문일 수도 있으므로. /초역 니체의 말, 97쪽


사람을 볼 때는 그 사람의 고귀함을 보도록 하라. 그 사람의 비열한 면이나 표면상 드러나는 것만 본다면, 그렇게 보는 이 스스로가 매우 좋지 않은 상태에 있다는 증거다. 그것은 누군가의 저급한 면만을 봄으로써, 어리석고 노력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은 저런 인간들보다 고귀하다고 생각하려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고귀함을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과는 관계하지 마라. 자신 또한 그와 똑같은 저급한 인간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초역 니체의 말, 1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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