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출사를 나가곤 했다. 때로는 사람들과 때로는 혼자 다녔다. 그러다 가끔은 두둑한 용돈을 주고선 남동생을 데리고 가기도 했다.
올림픽공원 장미광장도 그렇게 남동생과 둘이 가게 됐다. 장미광장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품종의 장미가 있었다. 색깔도 흰색, 노란색, 분홍색, 빨간색 등 무궁무진했다. 장미꽃만큼 예쁘지 않은 내 외모가 아쉬웠다. 그럼에도 꽃이 많아서 기분이 한껏 고양됐던 것 같다.
그게 아마도 4년 전 6월이었던 것 같다. 동생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이제 다시 가게 된다면 혼자 가야 할 것 같다. 사진을 왜 이렇게 못 찍냐고 짜증만 내고 동생을 부려 먹기만 하고 잘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너무 가슴이 아프다. 동생은 장미꽃의 꽃들보다 더 아름다웠다.
남양주시 물의 정원에도 함께 간 적이 있다. 그때 우산이 없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오다가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을 사 먹었다. 동생은 외출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렇게 가끔 있었던 함께한 시간이 아련하게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내 희미한 기억력이 순간들을 조금씩 지워가지만, 마음속에 닫아걸고 절대 잊히지 않도록 해야겠다.
나는 원래 결정론자였다. 사람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고 믿었다. 순간의 선택 또한 결국 운명이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동생의 죽음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갑작스러운 동생의 죽음은 상실을 받아들이기에 너무 벅찼다. 그 이후로 나는 결정론자면서 자유의지론을 결합하게 됐다. 우리에겐 주어진 운명은 있지만, 얼마든지 자유의지로 바꿔나갈 수 있다고. 모든 것이 운명의 손아귀에만 있는 게 아니라고.
그 후로 우주나 과학, 영혼의 세계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싶어졌다. 무한히 넓은 이 우주 안의 창백한 푸른 점에 사는 지구인은 너무나도 먼지 같은 존재니까. 우리가 모르는 무한한 미지의 세계가 너무나 많을 테니까. 감히 인간의 힘으로 그 모든 비밀을 다 알 순 없을지라도 먼저 연구한 사람들의 지혜를 빌려 조금씩 가까이 갈 수는 있지 않을까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동생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리지도 않을까, 그렇게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