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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링크는 몇 년 전에 핀란드의 국민작가, 토베 얀손의 <보이지 않는 아이> 중 표제작 '보이지 않는 아이'를 읽고 쓴 감상문이다. 문득 이 소설이 생각나서 오늘 다시 읽어보았는데 여전히 가슴 아프고 결말은 꽤 통쾌하다. 이 단편소설 속 닌니는 잘못된 돌봄과 학대로 존재가 투명해진 아이다. 그래서 무민 가족과 함께 살게 되면서도 여전히 존재를 드러내지 못한 채, 처음에는 희미한 두 발만 보일 뿐이다. 이런 닌니에게 아무리 다정하게 대하고 사랑을 표현해도 워낙 트라우마가 심해서 소용이 없었는데 닌니가 존재가 드러난 순간은 화를 낼 때였다. 무민파파가 무민마마에게 바닷가에서 짓궂은 장난을 치려고 할 때 용기를 내서 꼬리를 깨물어버린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내 남동생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와 남동생은 닮은 점이 많았다. 비슷한 상처도 공유했다. 그런데도 나는 내 동생이 얼마나 아픈지 미처 알아채지 못한 것 같다. 나는 내 아픔과 트라우마를 드러내고 치료도 받고 상담도 받고 항상 많은 사람들과 공유했다. 하지만 내 동생은 철저히 자기 안으로 숨어버렸다. 그러한 아픔을 예술 세계에서 치유받았다. 하지만,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애니메이션 제작을 그만두게 됐을 때, 마음이 많이 무너져 내린 것 같았다.
나는 내가 따돌림과 오랜 괴롭힘에 시달려와서, 또한 편견과 차별 어린 시선을 많이 겪어와서 비슷한 상처를 지닌 사람들에게 더 공감하고 마음이 쓰이곤 했다. 하지만 정말 이 소설처럼, 닌니가 그래도 다른 누군가를 위해 화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은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고, 회복의 여지가 있다고 느껴진다. 그런 일말의 가능성조차 없다면, 아마 병이 깊어 무너져 내려서 영영 보이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닌니는 용기를 내 무민파파의 꼬리를 깨물었고, 무민파파가 물에 빠져 두 귀가 진흙으로 가득 찼을 땐 깔깔 소리 내어 웃기까지 했다. 그 모습이 너무 대견하고 기특하게 느껴지는 건, 이제 닌니가 보이는 아이로 변했기 때문이다.
나도 오랜 시간, 보이지 않는 아이로 살며 나 자신을 드러내길 꺼려하고, 숨죽여 살아왔지만, 이제 정신과치료도 그만두기 시작했고, 새롭게 일상을 꾸려나가고 있다. 나는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아이도, 상처 속에 매몰된 아픈 환자도 아니고,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여전사로 살아갈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상처를 입은 사람이 슬피 울고 있다면, 꼭 이 소설을 추천해 주면서 맘껏 분노하라고, 맘껏 소리치라고, 함께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적극 응원해주고 싶다.
내 동생, 충북도립대 컴퓨터정보과 우준영, 졸업 후 가톨릭대 편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