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겪었던 부당한 일들.

by 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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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차 때, 나는 학교 바로 옆 사택에 살면서 7시에 출근하고 밤 10시, 11시에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때 학교 선배 교사는 내가 그러면 자기마저 눈치 보이고 기준이 올라간다며 칼퇴를 종용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서툴고 처음이었던 나는 준비할 게 너무 많아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자 마치 드라마 <미생>에서 안영이가 여러 남자선배들한테 구박받은 것처럼 나도 그러한 일을 겪게 됐다. 게다가 그곳은 승진 점수 따러 온 교사들이 가득한 곳이어서 나처럼 일개 신규 여교사한테 호의적이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교실도 예쁘고 깔끔하게 정리해 왔는데 어느 날 공개수업을 앞두고 모두가 함께 전 교실을 둘러보았을 때다. 그때 교감선생님은 굳이 들추지 않아도 될 쓰레기통을 뒤로 밀며 먼지가 있다고 타박을 해서 난 정말 서러움을 느꼈다.

1~2년 차에 같은 학교에서 그렇게 고생하고 나서 나는 3년 차에 읍내에 있는 1번지 학교로 옮겼다. 1~2년 차에 거의 따돌림 비슷하게 괴롭힘을 당한 기억이 있어서 내가 먼저 더 선수 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장선생님한테 먹을 것도 자주 사다 드리고 아는 것도 모른 척하면서 물어보고 예의를 다해 사근사근하게 대했다. 그러자 그 선배교사는 어느 순간부터 술자리에서 내 손을 잡으면서 ‘예쁜 후배’라고 말하더니 그 후로 수차례 악수를 빌미로 내 손을 덥석덥석 잡았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지만 바로 다음 해에 3시간 거리의 타시군으로 옮길 예정이어서 그렇게 모든 걸 참아내고 타지로 학교를 옮겼다.


4년 차에는 처음으로 6학년을 맡게 되었다. 나는 처음 맡는 6학년인지라 더 준비를 철저히 하였다. 개학 전에 학교에 며칠씩 나가서 대청소를 했다. 그때 쓰레기통이 더러워서 물로 깨끗이 헹구기까지 했다. 아무튼 우리 반은 처음에는 시끄럽다는 이야기도 들려왔지만, 점차 나와 호흡이 잘 맞아서 교원평가도 만점을 받고 수학여행도 즐겁게 다녀오고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당시 교장선생님은 자꾸만 내게 소개팅을 시켜주겠다고 하기도 하고 교장실에서 오랜 시간 나를 붙잡고 있어서 조금 부담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러자 이를 두고 선배 여교사들과 여교감은 나를 주시하고 수시로 헐뜯을 것을 찾아내 공격하고는 했다. 나는 그게 힘들어서 토로할 곳이 없어서 인터넷에 글을 쓰면 그마저도 훔쳐보고 꼬투리를 잡는 느낌이었다. 결국 나는 1년 만에 학교를 옮겼다.


5년 차에 처음으로 30 학급이 넘는 큰 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나는 처음으로 근무하게 된 큰 학교가 너무 좋았다. 학생수도 30명 가까이 되고 동학년이 있는 구성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에 대해 알듯 모를 듯 이상한 말을 해대기 시작했다. 내가 물어보면 명확히 말은 해주지 않으면서 나에 대해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는 느낌이 분명했다. 그러면서 또래 교사들은 나를 멀리했다. 나는 그때부터 심각한 번아웃과 우울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늘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나중에 퇴근하던 내가 간신히 출근하고 칼퇴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에서는 일을 열심히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빠졌다. 어차피 인정도 못 받고 괴롭힘만 당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렇게 나는 그 후로 의정부로 파견을 다녀와서도 복직한 후에도 한동안 절망한 채로 겨우겨우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난 2023년에 전국적으로 교사들이 투쟁하고 자살 소식이 연이어 들려올 때 매우 공감할 수 있었다. 동료교사, 학부모, 관리자, 학생들 어느 누구 하나 쉬운 상대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상담치료와 예술치료를 병행하며 내가 가장 행복했던 교직생활을 떠올리며 작은 학교로 돌아갔다. 어느 학교나 정치질과 파벌이 만연하지만, 그래도 작은 학교에서 내 일만 하는 게 나한테 더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결과적으로 다시 회복할 수 있었고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잘 견디게 되었다.


나는 충주맨 사퇴 뉴스를 보면서 공무원 사회의 불합리함과 썩은 시스템을 여실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로 나는 나를 한 명의 ‘교사’이자 ‘공무원’ 이전에 ‘예술가’로 정의 내리고 싶어졌다. 조직에 속하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부속품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지만, ‘예술가’로 생각하면 내가 주도적으로 시스템을 만들어나가고 예술가처럼 창의성을 발휘하여 새로운 교육의 길을 열어나가는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충주맨은 조직의 울타리를 벗어나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내 울타리 안에서 나만의 방법으로 해법을 탐구해나가고 싶다. 어떤 길이든 각자의 모든 길에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