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를 건네고 멜로디를 얹는다는 것
※ 본 글에는 영화의 결말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을 다시 봤다. 이 영화는 대학생 때 개봉 당시에 영화관에서 봤었는데 주연 배우가 휴 그랜트와 드류 베리모어란 사실과 OST가 유명하다는 사실 외에는 기억이 희미하다. 그래서 다시 꺼내 보게 되었는데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 채 안 되는 짧은 분량이라서 그런지 정말 경쾌하게 흘러갔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영화 내내 몰입하면서 보았다.
이 영화에서는 공감 포인트가 정말 많다. 그래서 더 편안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었다. 일단 남자주인공인 휴 그랜트가 연기한 알렉스는 한물간 스타다. 왕년에는 이름 좀 날렸지만, 지금은 놀이동산 무대 같은 곳에서나 찾아준다. 사람들 대부분이 리즈 시절이 있고 사실 그 시간이 지나면 좀 더 젊고 세련된 새로운 주자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마련이므로 좀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나도 스물셋이던 기간제 교사 시절에는 사랑스러운 병아리 교사 취급받았는데 어느새 경력이 꽤 차고 나니깐 부담되는 게 여간 많은 게 아니다. 그래서 알렉스가 톱스타 코라의 작곡 제안을 받아 들고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어쩐지 남 일 같지 않았다. 그건 어쩌면 재기의 기회니까.
여자주인공인 드류 베리모어가 연기한 소피 역도 매력적이다. 소피는 알렉스의 집 화초에 물을 주러 오면서 둘이 만나게 된다. 소피는 대단한 사람도 화려한 사람도 아니다. 그저 전 연인에게 글을 뺏기고 루머까지 뒤집어쓰며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대단하고 완벽한 사람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어딘가 결점 있고 부족한 사람은 나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에 영화를 시청하는 관객들 또한 자연스럽게 소피를 응원하게 된다.
이런 둘이 함께 써 내려가는 사랑 이야기가 유쾌하고 코믹하면서도 말랑말랑하다. 전 연인에게 상처받은 소피 대신 소피의 전 연인과 대신 싸워주는 알렉스의 용감무쌍한 행동은 통쾌함을 안겨준다. 특별한 듯 특별하지 않은 듯 무심하게 흥얼거리는 소피의 가사가 알렉스의 마음에 쏙 드는 것은 둘이 꼭 천생연분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서막 같다. 영화 제목처럼 소피는 작사를 하고 알렉스는 작곡을 하는 것, 이런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은 마치 처음부터 운명이 듯 느껴졌다. 서로의 빈칸을 채워가며 완성되는 노래는 곧 이들의 사랑을 닮았다.
결국 이 영화는 둘이 함께 작사 작곡한 곡을 콘서트장에서 코라가 감미롭게 부르며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바로 소피와 알렉스는 그 노래를 함께 들으며 껴안은 채 사랑을 확인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함께 무언가를 공유하고 만들어 나간다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낭만적인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가사를 건네고 남자는 멜로디를 얹으며 하나의 예술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것, 그렇게 서로의 세계를 조금씩 보태어 하나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 나 또한 나의 글쓰기를 응원해 주고 서로의 예술적 감성과 취향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낭만을 꿈꾼다.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사랑을, 나도 한 번쯤은 경험해보고 싶다.
https://youtu.be/mQNQ5tBeqn8?si=IMNe1-ofRl1jXvx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