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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 시절 우수한 성적을 받고 좋은 입시 점수를 받아서 대학교에 진학했지만, 기본적으로 딴짓을 많이 하며 산 사람이다. 이런 내가 사람들을 만나고 상처받으면서 깨달은 점이 있다. 그건 스펙이 좋고 화려할수록 맥락적 사고에 약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늘 정답 찾기만 해오다 보니, 정답 외에 오답이 아닌 다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을 두고 김누리 교수는 파시스트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나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사람은 점수와 스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세상에는 정답이라고 불리는 것 외에도 수많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참 많이 지치고 상처받았지만, 나의 가장 큰 문제는 맥락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너무 오래 껴안는다는 점이다. 이해하려고 하고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면서 나를 갉아먹곤 했다. 하지만 정말 그들을 위하고 나도 위하려면 이른 손절이 정답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사람은 곁에 있을 땐 절대 소중한 걸 모르지만 떠나고 나서야 깨닫곤 한다. 레이디 가가는 대학생 시절 지독한 따돌림을 당했지만, 그들을 벗어나서야 세계적인 대스타로 성공했다. 유명인 중에는 학창 시절 왕따였던 사람들이 많다. 일론 머스크, 에드 시런, 테일러 스위프트 등. 어쩌면 그들도 정답만 추구하는 사회 속 희생양 아니었을까.
경쟁사회에 살다 보니 그 사람이 쌓아 올린 스펙과 성과에 사람들은 자주 환호를 보낸다. 처음엔 매력적으로 보이는 그러한 점들이 함께 삶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고 시간을 보내면서 점차 파열음을 내고는 한다. 그들은 단선적으로 한 가지 생각만 할 줄 알지, 다른 맥락적 사고, 가능성에 대해 굉장히 폐쇄적이고 꽉 막혀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때론 틀려도, 오답도 괜찮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고 자신만이 옳다는 아집으로 가득하다. 그런 사람들하고는 어떤 대화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맥락적 사고의 삶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런 부류와는 더는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닫고 손절을 택하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떠나간다. 그럼 남아있는 그 사람들은 언젠가 자기와 비슷한 부류와 답답한 세상 속을 유영하다가 세계가 와장창 깨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서야 그들은 먼 훗날 한숨 쉬며 이렇게 깨달을 것이다. “대체 내가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내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어려서부터, 학창 시절부터 다양한 대안과 가능성을 모색해보지 않고 경주마처럼 주변에 귀 닫고 눈 닫고 오직 한 길만을 위해 달려온 이들의 부작용이다. 맥락적 사고란 단순히 똑똑함의 문제가 아니다. 맥락적 사고는 소설, 여행, 예술, 모임 등 다양한 삶의 경험이 풍부하게 쌓여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다채로운 삶의 경험을 어린이•청소년들에게 허락해주어야 한다.
나는 이제 맥락적 사고를 하는 사람을 찾는다. 정답을 말하기보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 틀릴 가능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생각이 전부가 아닐 수 있음을 아는 사람. 그런 사람과는, 오래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