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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Feb 14. 2022

인생은 소풍처럼

팬데믹을 극복하는 방법

 고등학생 때 처음 천상병의 <귀천>이라는 시를 접하고 가슴이 너무 설레었다. 의정부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던 나는 천상병 시인이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에서 그의 시를 접했다는 게 더욱 감개무량했다. 생에 집착하지 않고 소풍 다녀온 것이라고 담담히 말하는 시인의 통찰이 참 눈부시게 느껴졌다. 생로병사라는 말처럼 인생을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벼이 소풍처럼 여길 수만 있다면 참 한 번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참 삶에는 왜 이리 힘든 일이 많은 걸까? 경제적 어려움, 학업 부진, 실연의 아픔, 실업난, 가족 간의 갈등, 병마와의 싸움 등 인생은 매 순간 극복해야 할 과제들로 넘쳐난다. 이 세상에 아픈 손가락 하나쯤 없는 사람이 있을까? 생각보다 세상은 공평하고 신은 우리에게 극단적이게 불행만 주지도 극단적으로 행복만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아우성이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갖고 있는 그림자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밀한 사이가 아니면 자신의 깊은 비밀까지 모두 공유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것을 침범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 가깝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은 매우 불쾌할 것이다. 그런데도 상대방에게서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발견한 사람은 어떻게든 상대방의 어두운 면을 캐고 싶어 하고 까발리고 싶어 하고 만천하에 공개해서 망신을 주고 싶어 한다. 왜냐면 자신은 지금 너무 초라하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불만족스럽고 인생이 불행하기에 다른 사람도 나처럼 알고 보면 불행하다고 이야기해주길 원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자신의 불행을 감추고 천박한 만족감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만 주는 하이에나 떼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각자가 갖고 있는 비밀과 상처는 그 자신이 스스로 꺼내어보이고 싶을 때만, 유대감이 형성되었을 때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이자 상대에 대한 존중이다. 그런데 그것을 무방비로 침범하며 대중 앞에서 마녀사냥을 하며 물어뜯고 밑바닥으로 추락시키고 싶어 한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참으로 많이 목격해왔다. 타블로에 대한 근거 없는 학력위조 비난도 그렇고 최근에 프리지아 사태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사회에 불행하고 힘든 사람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짓밟고 싶은 그 사람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은 정말 운이 좋아서, 아니면 부정한 방법으로 그 모든 것을 획득했다고 믿고 싶어 할 정도로 인성 개차반의 사람들일까?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만 비난하는 그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셀로판지로 세상을 보면 풍경도 셀로판지의 색깔대로 보인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기 전에 자신부터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강약약강이 많은 사람들 틈바구니에 섞여 있다 보니 이제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왜’ 그럴까? 왜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일까? 그럴싸한 이유와 핑곗거리를 만들어서 자신보다 힘없고 약한 사람을 괴롭히고 인생을 망치려 드는 걸까? 그리고 하나씩 깨달아간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나약한 존재인 것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빈껍데기 같은 인생들이라는 것을...


 나는 그들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다른 사람의 성공과 행복을 가짜라고 욕하면서까지 자기를 기만시키려는 그 태도야 말로 거짓된 인생임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물론 그러려면 위에서 열거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모든 문제의 해결은 시스템에 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의 말에 따르면 지구에 생산되는 식량은 인류의 두 배를 먹이고도 남는 양이지만 굶주리는 인구는 8억 명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지도자의 역량이 중요한 가에 대한 이유이다. 현명한 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은 현명한 시민에 달려있고 인민재판하듯이 돌아가면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 타인에 대한 관대함과 성숙한 지성과 인격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팬데믹으로 힘든 이 시기에 연대의 아름다움을 발휘하며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처럼 이 세상을 소풍 나온 듯이 즐겁고 유쾌하게 사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를 위해서는 시민 모두가 자신의 삶을 책임진다는 각오로 매 순간 배움에 열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경쟁에서 좋은 성적을 차지하기 위한 맹목적인 질주가 아닌, 진정한 앎의 즐거움을 알아가기를 바란다. 그렇게 모두가 진정한 앎으로 가득한 삶을 산다면 인생이 잠시 소풍 나온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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