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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Apr 02. 2022

사랑에도, 미움에도 이유는 없다

고통 속에서 의미 찾기

 고등학생 때 봤던 만화책 <하늘과 바다 사이>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저렇게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저런 고운 마음을 지닐 수 있지?” 늘 밝고 낙천적인 여주인공을 범하려던 남자는 그 여자가 사실은 실로 커다란 고통 속에서 살아왔단 것을 알고 매우 놀란다. 비슷한 만화로 <캔디캔디>가 있다. 캔디는 수많은 남자에게 사랑을 받으면서도 단 한 번도 사랑이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럼에도 끝까지 늘 웃음과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는다. 아마 앞서 소개한 <하늘과 바다 사이> 속 남자처럼 겉모습만 보면 생각 없이 사는 운 좋은 여자쯤으로 치부하지는 않을까 싶다. 


 인도에 석가와 고타미라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고타미라는 여인은 아들이 죽어 슬피 울다 석가를 찾았는데 석가는 겨자씨를 구해오면 아들이 살아 돌아온다고 일러주었다. 단, 가족 중 어느 한 사람도 죽지 않은 집의 겨자씨를 구해 와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고타미는 너무나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겨자씨를 찾아 나섰지만, 사람이 죽지 않은 가족이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아들에 대한 슬픔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피상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는 상대방의 아픔과 고통을 일일이 다 알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며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기도 하고 폄훼하고자 하는 욕구를 나쁜 방식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데 앞서 열거한 이야기들처럼 상처 없는 영혼이란 없는 게 사람의 인생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들 틈에서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은 다 자기만의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그것이 굉장히 큰 고통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살짝 피부가 까진 정도의 옅은 흉터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고통은 자신이 직접 느끼기에 남들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것을 쉽게 털어놓고 드러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명랑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기쁨과 슬픔이 따뜻한 연대와 환대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배척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 차이를 또다시 인격을 폄하하고 공격하며 비난으로 메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사랑에 이유가 없듯이 미움에도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이유가 있어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하기 때문에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조금 더 사람에 대한 사랑과 포용력이 많아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던 빅터 프랭클처럼 나도 내 삶의 고통에서 나만의 의미를 만들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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