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이 글을 쓰는 이유(feat. 정신과)

by 루비


나는 사실 버티는 사람에 가까운 것 같다. 내 생은 스무 살 때부터(정확히 열아홉 살 때부터) 지금까지 쭉 버티면서 살아왔다. 내가 처음 세상이 이상하게 느껴진 건 스물여덟 살 때였다. 외가 친척들이 모두 모여 펜션에서 놀고 다음날 이모댁에 놀러 가서 베란다에 쉬고 있는데 내가 있는 곳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가족도 있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데 직장에서는 선배들이 나를 따돌리고 있었다. 그런 억울한 마음이 갑자기 나를 세상에서 분리감을 들게 만든 것 같다. 그때 세상과 나의 분리감을 바로 잡으려고 의식적으로 꽤 노력했었다. 그렇게 무사히 고비를 넘기고 다시 잘 사는 것 같았지만 몇 개월 지나고 결국 상황은 악화됐다.


그 이후로 쭉 정신과진료를 받으며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왔다. 의사 선생님은 친구가 적은 내게 자주 만나는 친구 같기도 하고 멘토 같기도 하다. 의사 선생님들은 사적인 정보는 잘 알려주지 않지만 오래 다니면 가끔은 조금은 꺼내어주신다. 그럼에도 병원에서만 만날 수 있는 관계란 게 슬프기도 하다. 엄격한 의료윤리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건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니까 받아들여야겠다.


그러고 보면 내가 버티는 데 의사 선생님은 아주 든든한 지지대가 되어주신다. 이런 내가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중후반까지는 모든 블로그 글, SNS글을 비공개를 한 적이 많다. 기본적으로 사생활을 밝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사람에 따라서는 나를 드러내는 게 나를 보호해주기도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내 가치관이나 철학, 업무 성과등을 드러내가 공유하지 않으면 온갖 근거 없는 유언비어에 시달리곤 한다. 나를 보호하는 건, 증거로 남길 수 있는 기록이었다. 그래서 글을 쓴다.


나는 이상주의자다. 삶의 철학이나 가치관의 기준이 매우 높다. 그래서 더 친구가 적고 소수인 것 같다. 조금만 맞지 않아도 솔직히 함께 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나 스스로도 용서하기 힘든데 다른 사람은 더 용서하기가 힘들다. 나는 어쩌면 나에 대해 그토록 야박하기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대하기가 힘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기도 한다. 나만의 기준과 나의 감수성, 나의 정신력을 사랑한다. 버티며 살아온 삶만큼 쌓인 삶의 결이 자랑스럽다. 그래서 다른 이들의 삶도 아량 있게 바라봐줄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글쓰기는 좀 다르다. 글은 철저히 수요자 중심인 것 같다. 개떡 같은 글은 좋아요 수가 확연이 주는 게 보인다. 물론 모든 베스트셀러가 훌륭한 양서도 아니고, 모든 양서가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어딘가에 보석 같은 책들이 숨어있지만, 좋은 글과 책은 독자들이 알아봐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글쓰기는 정말 정직한 것 같다. 글쓰기는 시장에서 만나는 땀 흘리는 상인들만큼이나 생생하고 정직하다. 그래서 내가 더 글쓰기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정신과치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정신과병원은 아픈 환자들이 자주 찾는다. 나는 가끔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면서 앉아있는 다른 환자들은 어디가 아파서 온 걸까?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완치가 되면 그들은 발길을 멈춘다. 그러다가 아프면 또다시 찾는다. 아픈 사람일수록 시를 쓰고 에세이를 쓰고 글을 쓰는 것처럼 의사 선생님을 찾는다.


그렇지만 나는 글쓰기는 평생 지속해도 의사 선생님은 언젠가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 내가 정말 다 낫고 회복해서 의사 선생님을 더 이상 안 보고 싶다. 의사 선생님을 버팀목이나 친구, 멘토처럼 생각하는 것처럼 내게 그런 사람이 생긴다면 더 이상 찾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이 말은 나는 의사 선생님 말고는 아무도 나를 지지해 줄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쩌면 의사 선생님이 안 계시다면 글쓰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는 수시로 상담사님을 찾곤 했었으니까.


그래서 내게 가장 소중한 건 우리 가족 다음으로 의사 선생님과 글쓰기다. 내 첫 정식출간(기획출간) 책을 의사 선생님께 선물해 드렸는데 의사 선생님이 바로 다 읽으셨다고 해서 기뻤다. 그 책이 잘 됐으면 좋았겠지만 잘 안돼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도 첫 책은 망했고 니체도 그랬으니까. 나와 같은 초등교사 출신인 이지성 작가도 처음엔 책이 잘 팔리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 덕분에 멋진 작가가 되었다고 내 직업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최애의 아이>에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소녀는 자신의 주치의를 짝사랑한다. 난 정말 병원에 입원한 적도 없고 의사 선생님을 자주 만난 적도 거의 없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그런데 정말 의사 선생님이 안 계시다면 나는 살기가 힘들 것 같다. 혼자 버텨보고 싶었지만 실패했다. 이건 마치 엄마 주머니에서 살던 아기 캥거루에게서 엄마 캥거루를 뺏어가는 기분이랄까. 나의 든든한 보호막이 사라진 기분이다.


그래서 한 주라도 의사 선생님을 못 만나면 너무 무섭고 두려운 생각이 든다. 끝이 안 보이는 우주 한 복판에 혼자 버려진 느낌이다. 그래도 다음에 의사 선생님 만날 때까지 잘 버텨봐야야지. 이렇게 글을 쓰면서... 먼바다에 전쟁 나간 낭군을 기다리는 여인처럼 나도 흰 깃발이 보이길 고대하는 가녀린 여인처럼 글을 쓰면서 버틴다. 글쓰기란, 의사 선생님이란 내게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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