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피해자가 숨어야 할까

by 루비

내가 겪은 트라우마와 관련된 뉴스 기사를 보면 다시 옛일이 떠오르곤 한다. 내가 대학 새내기시절에 나는 겨우 만 18세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과 동기들은 띠동갑까지 차이나는 등 연령대가 다양했다. 그때 난 입학하자마자 지독한 따돌림을 당했다. “네가 경기도 사람이라 싫어.”, “네가 쓰는 말은 표준어가 아니라 경기도 사투리야.”. “네가 쓰는 말은 아나운서가 쓰는 말과 달라.” 이런 말들을 지껄였다. 그러면서 나를 모임에서 배제하고 은근히 소외시키는 날들이 많았다. 상처가 심해서 여기에 쓸 수는 없지만 폭언도 많이 들었다. 나는 그 어린 나이에 왜 부모님한테 말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혼자서만 끙끙 앓았을까. 우리 과는 30명씩 A반, B반 나뉘어서 60명 정도 되었는데 내가 유일하게 믿은 동기는 우리 반이 아닌 B반에 한 명 있었다. 하지만 그 한 명도 내가 교생실습을 나가 주목을 받자 심하게 관심을 갖고 간섭하려 드는 게 느껴졌다.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관심사가 다양하냐고 말하며 어려서부터 오직 성적제일지상주의로 살아온 그 애는 뭔가 결이 맞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관계에서 소외되자 그 틈을 파고든 남자 선배들이 있었다. 그때는 무례해서 기분이 나빴지만, 나는 왜 그렇게 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을까? 헤어질 때마다 악수하자고 손을 내밀고 자꾸만 몸을 툭툭 건드리고 성희롱을 함에도 나는 화를 낼 줄 모르고 움츠러들었다. 내 안에서 차곡차곡 불쾌감과 상처를 쌓아 올렸다. 그때 고작 만 18세였다. 미성년자였다. 나보다 3~4살 많은 그들이 무섭고 기분 나쁨에도 불쾌감을 표현하지 못했다. 나는 영재 진단도 받고 고지능자이지만 이건 마치 뉴스에 보도되는 지적장애인들 성희롱 성추행하는 남자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평범하지 않아서 소외되고 약해서 저항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과 같은 지역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게 나는 엄청난 트라우마였고 공포였다. 그래서 지금도 시도 내 연구회나 모임에는 일절 나가지 않는다. 왜 피해자가 숨어 살아야 할까.


그렇게 숨어 살다가 어느 순간, 내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지독한 피해자라는 자각이 일자 참을 수가 없어졌다. 너무 아프고 힘들고 분노가 치솟았다. 그렇게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공소시효와 증거싸움으로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인 내가 모든 누명을 뒤집어쓸 때 절망하고 피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그 여파는 아무 잘못 없는 내 동생까지도 고통받게 됐다. 정말 착한 사람들은 고소를 하는 순간에도 가해자의 인생을 걱정한다고 한다. 내 동생이 고등학생 때 학교폭력을 당했을 때도 우리 가족은 담임 선생님의 설득에 가해자의 인생을 걱정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이었나라는 후회가 된다. 나도 마찬가지다. 계속해서 여러 사람들이 겪을 후폭풍이 두려워서 망설이곤 했다. 그런데 뉴스나 SNS에서 비슷한 사례들을 수차례 접하면서 그럴 필요가 없단 걸 깨달았다. 그냥 악한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선한 사람들은 절대 이해 하기 힘든 본성이 나쁜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용서할 필요도 가까이할 필요도 없다. 내 인생에서 절연해야 남은 인생이 또다시 고통으로 얼룩지지 않게 된다. 난 그래서 죽을 때까지 대학 동기, 선배들 그 누구도 만나지 않을 생각이다. 가해자뿐만 아니라 내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차디차게 외면하고 오히려 가해자들과 한통속이 되어 나를 매장시키려든 그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