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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Apr 03. 2022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그리운 어린 시절


 마치 나도 연어가 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조금 더 나이 들면 고향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은 정지용 시인의 <향수>가 생각이 나서 유튜브에서 가수 이동원, 성악가 박인수의 가곡 버전을 찾아 듣기도 했다. 예전부터 나도 언젠가는 모교에 근무해보고 싶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가져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바로 옆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근무해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진짜로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해보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그 당시 12 학급의 작은 학교였다. 집에서는 걸어서 1시간 거리, 차를 타면 8분 거리에 위치했는데 교통편이 안 좋아서 엄마는 나를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학원을 다니면 학원차가 아침저녁으로 태워주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갖고 싶어서 초등학교 3학년 때는 엄마 아빠한테 울고 불며 떼를 써서 생일선물로 기어코 피아노를 받아내고야 말았다. 근교 도시에서 트럭에 피아노를 싣고 오는 것을 보며 환희에 차던 그때의 내 모습이 정말 철부지만 같다. 그 피아노는 여전히 우리 시골집 한 곳에 있어서 가끔씩 집에 갈 때 둥당거리며 연주한다.


 나는 고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가 살던 곳이 빠르게 공업화되었기 때문이다. 공장이 많이 늘어서고 덤프트럭이 쉴 새 없이 달려서 공기도 좋지 않고 예전의 자연경관을 누릴 수가 없었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우후죽순 늘어서고 지상철이 들어오고 버스노선이 확대되어 편리한 점도 늘었지만 어린 시절 뛰놀았던 자연의 아름다움은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그 기억은 너무나 까마득해서 어린 시절에는 엄마와 함께 뒷동산에 가서 개나리도 따고 진달래 앞에서 사진 찍고 작은할아버지가 하시던 사슴농장에서도 뛰놀고 참 행복했었던 적도 있었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만 해도 가재 잡고 놀던 개울물이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말라버리고 사라지고 없었다. 그게 너무나 슬프고 아쉬웠다. 그래도 아빠가 집 마당에 원두막도 지어 주셔서 여름에는 동네 친구들을 불러 모아 부루마블 보드게임을 하거나 집에서 키우던 포도나 수박을 먹고, 가을에는 밤을 주우러 다녔던 행복한 기억은 남아있다. 그런데 그러한 것도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에 커다란 화재가 나면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중학교는 읍내에 있는 학교로 가게 되었는데 12 학급이던 초등학교와 달리 세 개 학년에 30 학급 가까이 되고 각양 각지에서 온 학생들로 힘들었었다. 다행히 좋은 친구를 사귀어서 무사히 고입시험을 치르고 도시에 있는 명문고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친했던 친구들과 멀어져서 슬펐지만, 고등학교에 가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학교 근처에는 작은 서점이 있어서 종종 놀러 가서 서점 아저씨께 책을 추천받기도 했다. 그때 추천받은 책이 틱낫한 스님의 명상책과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이었다. 


 그러고 보니 빠르게 도시화된 고향보다 더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지닌 곳은 내 초임지였던 경북 영양이었다. 밤하늘엔 별들이 무수히 반짝이고 사택에서는 밤마다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리고 십 분만 걸어가면 깊고 그윽한 산맥과 흐르는 하천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 겨울에는 쏟아지는 폭설로 꼼짝없이 갇히기도 한 적이 있는 곳. 나의 그리움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의 생태와 맞닿아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 가평에 와서 살고 있나 보다. 정지용의 <향수>가 생각나던 밤,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고 사람들이 도시로 도시로 향하는 세태에 빨간 머리 앤이 살았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에이번리 마을 같은 곳이 더욱 많이 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본다.



https://youtu.be/BSaYz2wpoMg 정지용 시, 김희갑 곡, 이동원,박인수 노래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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