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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Apr 28. 2022

시인을 꿈꾸다

그 머나먼

 나는 예전에는 이것저것 마구 지식을 주입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과부하가 걸렸다. 사람들이 좋아하지도 않았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니 지식을 쌓기보다 지혜를 쌓으라고 하셨다. 여전히 지식에 대한 욕심이 있지만,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더 근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불혹이 된다면 조금 더 지혜로워질까? 그 열망을 마음 한 구석에 수줍게 감춰두며 김현 시인의 시 처방전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를 읽었다. 예전의 독서습관대로라면 속독을 끝내고 쌓아놓은 다른 책을 읽고자 했겠지만, 이제는 한 글자, 한 문장씩 음미하며 읽는다. 그러다 진은영 시인의 <그 머나먼>이란 시를 마주했다. 진로에 대한 걱정과 고교 생활의 막막함과 답답함으로 괴로워하는 한 고등학생에게 처방해준 시이다. 꿈이 없어 힘들어했던, 시험 스트레스로 불안해했던 과거의 나로 돌아가 이 시로 맘껏 지나간 아픔을 치유했다.     


다음 시는 진은영 시인의 <그 머나먼>을 바꿔 쓴 저만의 시입니다! 원문은 찾아 읽어주세요!     



그 머나먼     


한강보다 템스강이 좋았다

반 친구보다 헤이리가 좋았다

하니보다 캔디가 좋았다

한국지리보다 세계지리가 좋다

아가씨들의 명품가방보다 인터라켄 기념품점에서 산 마그넷이 좋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보다 작가들의 판타지가 좋다     


멀리 있으니까 여기에서

     

도쿄 바나나빵보다 황금빛 휘낭시에가 좋다

더 멀리 있으니까

친구에게서, 젊은 날 슬픔에서     


까미유보다 류시화가 좋았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상처들에서     


바늘보다 색 볼펜이 좋다, 털실보다 패브릭 노트

무협지보다 세계문학이 좋다

어린이가 대학생보다 좋다     


더 멀리 있으니까     


나의 책상에서

분노에게서

나에게서     


너의 노래가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기쁨에서, 침묵에서, 노래에게서     


여행이, 음악이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기차 안에서, 깃털 구름에게서, 손 안의 휴대폰에게서     



 2018년에 3학년이었던 제자들과 국어시간에 바꿔 쓴 시를 모아서 <풀꽃반의 동시 작품집>이라는 독립출판을 펴냈었다. 평소에는 나사가 반쯤 풀린 듯 흐리멍덩한 동태눈을 하던 아이들이 시 쓰기 수업 시간에는 놀랍도록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 학부모께서는 매우 기뻐하며 감사문자를 보내오기도 했다. 그래서 6학년 담임했을 때도 해보고자 했지만, 저학년 아이들과 다르게 시라는 것에 이미 흥미를 잃을 대로 잃은 상태여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동시집 마지막 페이지에 3월에 찍은 단체사진과


이 동시집이
   마음 한 켠에 작은 보물 상자가 되어,
   오래오래 이 시절 고운 마음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라는 문구를 적어두었는데 얼마나 기억할까 사뭇 궁금하다.      


 무튼, 오늘 내가 가르쳤던 3학년 어린이가 되어 시를 바꿔 써 보니 아이들이 왜 그렇게 좋아했는지 온 마음으로 이해가 갔다. 처음부터 시를 창작해내는 것보다는 창작의 고통이 덜 하면서도,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근사한 시를 완성할 수 있다. 시인을 꿈꾸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데, 시 쓰는 게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은 ‘시 바꿔 쓰기’를 추천한다. 시인을 꿈꾸며 시 안에 나만의 꿈을 가득 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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