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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Jun 12. 2022

나만의 무대를 찾아서.

아픈 몸을 이끌고.

   

 몸이 부서질 것 같다. 발끝에서부터 신체화 증상이 일어나 다리를 가만히 두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움직이지도 못하겠고, 머릿속도 정신이 혼미하고 아득하다. 부서질 것 같은 몸을 간신히 부여잡고 도서관 내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일요일인데 너무 힘들어서 119에 연락을 했다. 구급대원이 와서 내 혈압을 재고 겉으로 드러난 증상이 없다며 이름만 조사하고 그냥 돌아갔다. 나는 몸과 정신이 너무 지치고 힘든데, 눈에 보이지 않는 외상과 달리 마음의 내상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고 죽을 것처럼 정신이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데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아프다는 것을 위로받기가 힘들다. 심하면 꾀병 환자 취급받기도 한다.


 12년차 교사로서 지난 십수년간의 교직 생활을 돌아보면 온통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 투성이었다. 이런 교직사회에 부적응하는 내 입장으로서는 승승장구하며 훌륭한 선생님 취급받는 선생님들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들은 어떤 백이 있어서 저리 인정받는 걸까 시기심 가득한 눈으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하고 성과를 내도 막판에 토사구팽 쳐지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에... 신규 때 교장교감선생님은 명절 때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나를 대놓고 면박줬으며 내가 시도대회 컴퓨터 대회에서 1등을 했음에도 대표로 상을 받고 싶으면 술시중을 들라 했다. 남자 선생님들의 친밀감을 가장한 성추행과 여자 선생님들의 주도로 일어난 왕따로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다. 어떻게든 잘 지내보고자 선배 교사 일을 도와드리려고 하면 “필요없어.”라는 냉대와 함께 나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성적인 소문을 퍼뜨렸다. 또래 남교사들은 그런 소문을 막아주고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가십을 이용해 나를 노려보고 폭언을 퍼붓고 못살게 굴었다. 스토킹도 1년이나 당했다. 1년 간 지도한 성과로 학생들 사이에서 교원평가 만점을 받자, 또는 학생들과 잘 지내면 "그 아이들은 원래 착했어."라며 폄하하고 깎아내리기 일쑤였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체계에서 내 노력과 성과는 입에서 입으로 소문으로 난도질당했다. 그렇게 나는 그 지역에서 완전한 이지매를 당했다. 참고 참고 못참아 신고를 하자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혀 이상한 교사로 소문이 돌고 또다시 2차 가해를 당했다. 군 성 비위 사건의 피해자들의 자살과 사건 경위를 보고 있자면 또다시 트라우마가 폭발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군 조직 못지않게 교직 사회 내부도 굉장히 보수적이고 비합리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과연 우리나라에 그렇지 않은 조직이 있을까? 요즘 핫한 메타버스나 게임 산업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기대해보지만, 내가 워낙 트라우마가 심해서인지 왠지 한국 기업이라면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잘 되면 조직의 공, 못되면 책임자 탓, 아무리 성과를 내도, 사정없이 인격이 폄하되고 조리돌림의 대상이 되는. 무한한 의무와 책임만 있는 곳. 그런 곳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능력자들의 비법이 진짜로 궁금하다. 그들은 어떤 능력이 그렇게 탁월한 걸까? 나는 도저히 흉내낼 수가 없다.


 그렇게 탁월한 그들은 내가 그렇게 어려움을 토로하고 도움을 요청했을 때,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외면했다. 유일한 버팀목이자 희망이라고 기대했던 그들은, 그렇게 추앙받는 그들이, 내게는 또 다른 괴물들처럼밖에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한 사람을 쥐어짜서 차지하는 파이, 그들만의 독차지, 독무대. 이제 하나도 부럽지 않다. 나도 나만의 무대를 찾아 나설 때이다. 멀고도 험한 길이 되겠지만. 그리고 그 끝에서 나는 그 누구도 외면하지 않는, 연대의 손길을 내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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