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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Jul 31. 2022

슬픔과 고난을 이겨낸 삶

알면 두렵지가 않다

 처음 새 아파트를 찾아간 날이다. 이사 오기 전에 한 번 와보긴 했지만, 그땐 가족들과 함께 엄마가 운전하는 자가용을 타고 온지라 대중교통으로 가는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집 근처 지하철역에서 내려 지도 앱을 켜서 우리 아파트 가는 길을 검색해보니 금방 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지하철역을 나와서 오른쪽 방향인지 왼쪽 방향인지도 헷갈려서 길 가는 행인에게 길을 물어 오른쪽 방향임을 알았다. 그리고 집 근처 중학교를 향해 걸었는데 걸어도 걸어도 보이지 않아 또다시 길 가다 마주치는 사람에게 물었다. 그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고 걸어가고 있다고 했다. 엄마는 늘 자차를 이용하기에 지하철역에서 우리 집까지 걸어서 몇 분 걸리는지 몰랐고 그저 가깝다고만 했다. 그런데 나는 처음 우리 집으로 걸어갔던 그 시간이 한 30분은 걸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아파트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서 15분이다. 초행길에는 길게만 느껴졌던 그 길이 오늘도 돌아오는 길에 ‘이 정도면 가까운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한층 태도가 여유로워졌다.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르면 두렵고 막막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것도 일단 알고 나면 친숙하고 가깝고 수월하게 느껴진다는 생각!


 그러고 보면 거의 모든 것들이 그랬던 것 같다. 시험공부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내가 다 모른다는 사실은 두려움을 자아내지만 속속들이 파악하고 이해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 인간의 기원이든 우주든 심해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연구하고 알고자 노력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알면 알아갈수록 더한 애틋함과 애정을 느끼고 무장해제되듯 무언가를 알아가는 건 안다는 희열뿐만 아니라 안정감과 편안함마저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모른다는 두려운 상태를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앎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알고자 하는 노력 중에 가장 어려운 , 사람의 본성을 아는  아닐까? 731부대의 마루타 실험 중에는 엄마와 아이를 수조에 가두고 모성애를 테스트한 실험도 있었다고 하는데 결국 엄마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아이를 밟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스물네 살에  교직생활을 시작하면서 교육장님이 신규교사들에게 선물한 책에서 ‘인간의 본성은 위기의 순간에 드러난다라는 문장도 읽었었다. 평상시에는 누구나 천사처럼 굴고 다정하게 굴고 인격적인 모습을 보일  있어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숨겨진 가면을 벗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일상에서는 사람의 진면목을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다만, 내가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한 가지 깨달은 건, 각양각색 백인백색의 사람들 중에서도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사람은 강인하며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조금만 불리해지거나 힘들면 가장 비겁하고도 손쉬운 길을 택하기 때문이다. 그게 비열한 일인 줄 알면서도 온갖 자가당착적 합리화를 들어서 자신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하며 특히 비슷한 동류와 연대하며 온갖 변명과 핑곗거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나 인생은 절대로 꽃길만 걸을 수도 없고 평탄한 탄탄대로만 펼쳐지지 않는다. 그럴 때 자신의 소신을 버리지 않고 꿋꿋이 지조와 절개를 지킬 수 있는 건, 그만한 내적인 힘과 품성을 지녔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를 키울 때도 원하는 대로 모든 걸 다 들어주면 사회성 발달 및 인격 형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어떤 실험에서는 좁은 화분에 심은 보리 한 톨이 꺼내서 뿌리를 확인해보니 10,000㎞가 넘는 길이였다고 한다.(출처: 이시형, 박상미의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온실 속에서 자란 장미 같은 사람을 부러워하지만 보리는 그런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빅터 프랭클이 창시한 의미 치료에서는 죽음 직전의 시련을 겪은 사람은 인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시련과 고난은 우리가 신에게 선택받은 축복일 수 있다. 탄탄대로의 인생에서는 결코 알지 못하는 극단적인 감정의 경험은 사람에게 인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게 해 준다. 나는 아무런 시련 없이 살아온 사람보다 고통을 극복해낸 사람이 더 멋져 보인다. 사람을 안다는 건, 그 사람의 인생 통지표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기쁨과 성공으로 가득한 통지표보다 슬픔과 아픔을 극복해낸 뒤의 성장으로 단단한 내면을 지닌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더욱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공허한 눈빛과 거짓된 내면으로 점철된 삶보다는 값진 성숙을 이룬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두려움 없이 손을 내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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