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 소설
나는 학교가 싫다. 학교는 자율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곳이다. 9시에 등교해서 하교할 때까지 오로지 선생님이 하는 말씀을 듣고 받아 적고 듣고 받아 적고의 무한 반복. 3월이면 선생님은 장래 희망을 묻는 쪽지를 내준다. 꿈은 왜 물어보는 걸까? 우리가 꿈꿀 자유도 허락하지 않으면서. 늘 하는 말은 시험을 잘 쳐야 한다. 좋은 대학을 가야 좋은 직업을 갖는다. 공부 열심히 해라. 이 말뿐이면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요즘 고민은 무엇인지, 친구 관계는 어떤지에는 코딱지만큼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지난 5월 어버이날을 맞이하며 선생님은 ‘효’를 주제로 글쓰기 과제를 내주셨다. 고단한 삶을 살아오신 우리 부모님을 생각하며 나는 나름 고심해서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고 한 편의 에세이를 제출했다. 그런데 수행평가 점수 발표날, 웬걸! 나는 빵점이었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없었다. 그 길로 재빨리 국어 선생님을 찾아갔다. 국어 선생님 왈. “너 이거 베낀 거잖아. 그래서 빵점 준 거야.” 난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한 줄 한 줄 내가 고심해서 쓴 글을 베꼈다고 말씀하시다니. 내가 그만큼 잘 썼나라는 생각에 우쭐해지다가도 아니 그런 것도 하나 파악하지도 분석하지도 못하면서 무슨 교육전문가라는 거야란 생각에 코웃음만 났다. 결국 옆에 선생님께서 평소 나를 눈여겨보시다가 “너 논술 전형으로 대학 가보는 건 어때?”하시는 말씀에 일단락이 되었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읽었던 단테의 <신곡>,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과 같은 작품들은 꾸역꾸역 읽기만 했지 사실 도통 뭔 소린지 하나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하지만 그냥 읽는 게 좋았다. 단테가 쓴 천국과 지옥, 연옥이 정말 있는 건지, 베아트리체라는 여인은 정말 실존하는 인물인지, 나도 그런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죄와 벌에서 라스콜니코프와 사랑에 빠지는 소냐를 보면서 나라면 과연 살인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그게 정말 가능하기나 할까 의문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으면서도 그런 의문을 갖기도 했다. 나도 작가 지망생이긴 하지만, 가끔 작가들은 정말 일반인들의 사고방식을 넘나드는 기상천외한 인물들이란 생각이 든다.
무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나는 선생님들이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선생님들은 학창 시절 모범생들이었다고 들었다. 공부를 정말 잘하는 엘리트들이라고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내가 보기엔 별문제도 안 되는 것에 호들갑을 떨고 유난인 것 같다. 수업 시간에 멍을 때리는 것, 책에 낙서하는 것, 여가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게임만 하는 것. 그게 왜 문제지? 내가 바로 그런데 말이다. 나는 이런 내가 좋다. 멍을 때리고 상념에 빠지면 내 사유력이 좋아진다. 책에 낙서를 하면서 지루한 수업 시간을 공상으로 채운다. 게임을 하면서 현실에서는 할 수 없는 가상의 경험을 하면서 또 다른 내가 되는 자유를 느낀다. 그러다가 시간이 나면 하는 게 공부이다. 나는 암기과목이 정말 싫다. 의미 없는 사실을 외우는 건 영 나와 맞지 않는다. 그보다는 적은 시간을 들이더라도 이해만 하면 얼마든지 고득점을 올릴 수 있는 국어나 수학 같은 과목이 훨씬 재밌다. 물론, 선생님들의 수업 방식이 바뀌면 역사나 과학, 사회 같은 과목도 재밌어질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미국의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에 빠졌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진정 천재임이 분명하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 의하면 천재는 범재나 수재에 의해 곧잘 공격을 당하고 심하면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로 인해 재능을 발휘하기도 전에 묻혀버리는 것이다. 나는 천재가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나는 천재도 범재도 수재도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세상에 쓸모 있는 인재로 남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러려면 학교 밖을 넘어서 세상으로 주파수를 맞춰야겠다. 지금 내가 속한 곳은 너무나 답답하고 좁다. 더 넓은 세계로 뛰어들자.
테일러 스위프트의 Look what you made me 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