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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Nov 02. 2022

당신의 계절은 안녕하신가요

애니메이션 <우리의 계절은>

애니메이션 <우리의 계절은> 포스터

따뜻한 아침식사     


 대학생 때 동아리 모임에서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엄마가 해 준 콩국수’라고 답했었다. 난 그냥 특별할 것 없이 엄마가 해준 콩국수가 제일 맛있어서 이야기했던 것인데 다들 부러워하며 쳐다봐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여전히 난 엄마가 해 준 콩국수와 김치가 제일 좋다. 나는 아직도 그 요리법을 알지 못하는 게 문제지만...


 넷플릭스에서 상영 중인 영화 <우리의 계절은> 속 첫 번째 작품 <따뜻한 아침식사>를 보며 떠올리게 됐다. 이 작품에서는 중국 계림 지방의 미펀이 소재다. 미펀이 뭔가 했더니 계림 지방의 쌀국수라고 한다. 쌀국수 하면 베트남이 유명한데 중국 계림 지방의 쌀국수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입가에 군침이 돌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은 음식의 풍미를 넘어선 아련한 추억이다. 그 시절 할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 장인의 손맛을 지닌 요리사, 추억의 첫사랑 등이 이야기를 버무려 더욱 정감이 넘친다. 자극적인 MSG를 친 판매를 위한 요리가 아니라 천연 조미료로 깊은 맛을 우려낸 요리처럼 잔잔한 일상이 그리움을 자아낸다. 평범하고 소박한 우리네 일상을 담아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특별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바로 우리 이웃의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요리 하면 떠오르는 추억은 정말 많다. 학급 아이들과 함께 한 요리 실습은 그 해의 이벤트와 같다. 아이들이 정말 좋아한다. 아이들 요리 솜씨도 수준급이다. 철 모를 땐 칼도, 휴대용 버너도 쓸 정도로 겁이 없었지만, 점차 경력이 생기면서 안전에 대한 조심성이 높아졌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요리는 무궁무진하다. 반 아이들과 <삼시 세 끼>가 아닌 <점심 한 끼> 에피소드를 찍는 기분이다. 다만, 코로나가 창궐하면서부터 요리 실습은 할 수 없게 됐다. 어서 일상을 회복했으면 한다. 밥상머리 교육이란 말도 있듯이 함께 요리하고 함께 식사하는 것은 사람 사이의 교류와 배움에 있어서 아주 좋은 윤활유와 같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애틋한 추억과 함께.     




작은 패션쇼     


 “어릴 때부터 예쁜 옷이 좋았다”라는 대사로 시작하는 <우리의 계절은> 두 번째 작품. 첫 대사부터 폭풍공감이 가서 더 호기심을 갖고 찬찬히 영화에 몰입하였다. 자매의 우정, 라이벌, 일에서의 성공,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버무려지면서 한 편의 아름다운 드라마를 연출한다. 탑모델인 주인공 이린과 여동생 루루의 자매애는 서로를 격려해주는 친구 같은 따듯한 가족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린의 후배 모델에 대한 경쟁의식을 바라보면서는 나의 일에 대한 전문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린은 치고 올라오는 후배 모델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하는데 여우같이 묘사된 후배 모델이 정말로 그런 여자인 것인지 아니면 이린이 바라보는 시선에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 나의 지난날에 대입해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이린처럼 선망하는 선배의 모습일 수도, 또는 나를 밟고 올라서려는 후배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 두 지점을 조율해서 겉은 부드럽고 속은 꽉 찬 프로페셔널한 직장인으로 자리 잡아가는 거 아닐까? 이린을 끝까지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매니저의 모습도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어릴수록 유리한 모델계에서 이린이 계속해서 버티고 성공가도를 달리는 비결이 아주 짤막하게 나오며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바로 그 지점이 제일 궁금했는데 그 부분을 잠깐 묘사한 것에 그쳐서 아쉬웠다. 자매애로만 뭉뚱그리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감이 느껴진다. 공감 가는 대사나 조금 더 구체적인 성장 모습이 그려졌으면 좋았을 듯싶다. 그리고 이린을 차 버린 남자보다 더욱 멋진 남자와 사랑을 하게 되면 일과 성공을 모두 잡은 롤모델로 자리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상하이의 사랑


 마지막 반전에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작품. 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더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오히려 소통을 방해하고 상처를 준 스토리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하지만 인연은 돌고 돌아 이어진다는 아름다운 서사를 담아내고 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주인공들, 비슷한 추억을 지닌, 비슷한 입시 관문을 거친 학생들의 이야기인지라 더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과 우정 이야기. 25분의 짧은 러닝타임임에도 그 안에는 인생과 사랑, 꿈과 목표, 추억의 애틋함이 넘쳐흐른다.


 문득 지나간 인연이 떠오르는 이야기. 빛바랜 우리들의 과거가 새로운 시작으로 물들 수 있음을 희망하게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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