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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Dec 13. 2022

내가 유년에서 성인이 된 기억

성숙해지기

내가 유년에서 성인이 된 기억

성숙해지기     


 EBS 클래스ⓔ에서 장강명 작가의 <책 한번 써봅시다> 강의를 듣고 있다. 그중 5번째 강의 – 에세이(3) 더 솔직해지기에서 장강명 작가는 ‘당신은 언제 유년에서 성인이 되었나요?’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듣는 순간, 순간적으로 생각해보았다. 장강명 작가는 강의에서는 사적인 이야기라 말할 수 없지만 스무 살 언저리쯤이라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보니 나도 스무 살 때였던 기억이 설핏 났다. 내가 스무 살 때 굉장히 충격을 받은 사건이었다.


 스무 살 당시, 대학생 2년이던 시절, 나는 우리과 동기 남학생 한 명을 지독하게 싫어했다. 그냥 옷 입는 차림새도, 뽐내는 태도도, 들려오는 소문도 죄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대로 된 대화 한번 나눠본 적 없지만 첫인상부터가 엉망인 동기였다. 도화선은 내 마음의 문제였지만, 불을 붙인 것은 주변 사람들의 험담이었다. 특히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지속해서 나에게 부정적인 정보를 흘려대니깐 나도 모르게 안 좋은 편견을 가지게 되었고 싫어했다. 그런데 그런 견고한 생각을 깨는 일들이 몇 차례 있었다. 


 한 번은 강의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려고 복도로 나가는데 출입구에서 그 동기가 나에게 “너 나 좀 싫어하지 마라.”라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너무 많은 티를 냈다는 생각에 뜨끔했다. 그러면서 점차 차가운 마음이 옅어졌다. 그리고 완전히 녹인 사건은 몇 달 뒤, 여름방학에 일어났다. 과 후배와 함께 서울로 가는 KTX를 타려고 함께 기차역으로 가던 길이었다. 그 후배가 하는 말이 내가 지독하게 싫어한 남자 동기를 두고 너무 착하고 좋은 선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때 엄청나게 충격을 받으면서 그 동기를 완전히 새롭게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후에 어떤 사람의 평판이나 들려오는 소문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사고방식을 체득하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종종 다른 사람 험담도 하고, 불만을 토로했던 내가 유년에서 성인이 된 시점이 바로 이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후로 블로그에서 어떤 블로거가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을 하지 않으니 할 말이 없어졌어.’라는 말에 공감을 하면서 좀 더 생산적인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사는 건 아니다. 나에게 악독한 행위를 한 사람들, 한계치를 넘어선 무례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참을 수 없고 화를 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토로하기도 한다. 다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에 대한 평판이나 소문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려고 하지 않고 최대한 겪어본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신상에 극단적인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아량과 관용으로 이해해보려는 태도도 많이 가지려 노력한다.


 그래서 결국 그 남자 동기하고 절친한 친구가 되었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해야겠다. 우리과에는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 남자 동기가 타깃에서 벗어나자 또 다른 동기에게 옮겨졌고 결국 마지막 타깃은 내가 되었다. 나는 “나 좀 싫어하지 마라.”란 말에 조금씩 편견의 안경을 벗었지만, 나머지 동기들은 도무지 그 편견의 안경을 거둘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상처와 고통을 감내하면서 어떻게든 그들을 이해해보려 했던 나는 이제 이해와 용서의 손길은 완전히 거두었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인연을 지어나가고 있다.


 세상에는 나이만 먹었지 조금도 유년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언제 철이 들고 언제 어른이 되는 걸까? 누군가는 육아를 하면서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죽다 살아난 경험에서 어른이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일부 남자들은 군대에 다녀와서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 나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보았을 때, 내가 유년에서 성인이 된 기억은 편견 없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질 때였구나 싶다. 거창하고 화려하게 성년의 날을 기념하는 것보다, 나이에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한 단계 성숙한 시점이 바로 유년에서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유년에서 어른이 되는 통과의례로 기억하는 가장 강렬한 장면은 바로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제제가 어른이 되었을 때이다. 제제는 말썽꾸러기라고 구박만 받지만 작은 라임 오렌지 나무 ‘밍기뉴’와 소중한 ‘뽀르뚜가’ 아저씨라는 친구가 있다. 늘 혼자인 제제의 유일한 말벗인 환상 속의 ‘밍기뉴’. 그리고 현실에서 실제로 말벗이 되어준 친구 ‘뽀르뚜가’ 아저씨의 죽음으로 어른이 된 제제. 제제가 어른이 됨과 동시에 현실과 고통의 세계로 들어선 ‘밍기뉴’. 참 가슴 아파하고 공감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유년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 것일 것이다. 나만 보이던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아픔이 보이는 것. 나만 아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다른 사람의 슬픔이 보이는 것.     


 어쩌면 너무 일찍 어른이 된다는 것 또한 가슴 아픈 일이다. 세상의 슬픔과 고통을 너무 일찍부터 경험했다는 것이니깐. 철이 늦게 든다는 건, 다른 사람의 아픔을 헤아릴 여유가 없는 것도 되지만, 한편 너무나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닐까. 한 번쯤 자신은 언제 유년에서 성인이 되었나 생각해보는 것도 자신을 성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장강명 작가의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 오늘 나를 한 뼘 더 성장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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