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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Jan 16. 2023

꿈꾸는 일은 정말 사치일까?

김미경 강사&드로우앤드류의 영상을 보고

 꿈은 사치라고 말하는 시대. 내가 좋아하는 일보다 먹고살기 위한 생계가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 꿈을 꿔도 좋다고 말하는 김미경 강사. 영상을 보며 되돌아보니 나도 늘 그런 인생경로를 거쳐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은 내 어릴 적 꿈인 교사라는 꿈을 이루었고, 조금 더 커서 꿈꾼 작가라는 꿈도 이루었다. 그다음 나의 꿈은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런데 공공연하게 교사라는 직업은 자주 주변 사람들에게 비아냥 내지 조소의 대상이 된다. 방학 때 댄스 연수를 들었다는 말에 격한 반응을 보이며 교사가 왜 댄스 연수를 듣느냐는 듯한 반응(체육 시간에는 신체표현활동이 있어요), 부재중 전화가 와서 뒤늦게 연락을 하며 방학 중이었다고 말하면 놀아서 좋겠다는 듯한 반응(실제로 41조 연수를 내고 자율적으로 신청한 직무연수를 수강하거나 출장연수를 내고 대학원 수업을 듣거나 아니면 다른 직장인처럼 연가를 내고 쉽니다)을 보면, 화가 나는 한 편 애잔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나 자기 직업에 만족을 하지 못하면 다른 직업을 부러워하고 비아냥댈까, 그렇게 부러우면 지금이라도 당장 다시 교대나 사범대를 가서 교사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어린 시절 꿈이 아주 많았다. 피아니스트, 작곡가, 화가, 디자이너(다 예술가네요)도 되고 싶었고, 어떤 계기로 인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도 꾸었다. 그 계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반 학생들을 둘씩 짝을 지어주면서 또래 선생님이 되어 다소 성적이 부진한 학생을 가르쳐주는 역할을 맡겼다. 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를 맡게 되었고, 방 한쪽 벽에 종이로 칠판을 만들어 붙여가며 가르친 결과 가장 많은 향상을 거둬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고 선물을 받아 뿌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다음 해에 장래희망을 써내는 시간에 나는 당당히 '선생님'이라고 적어서 냈다.


 그러던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왕따를 당하고 힘든 시간을 거친 후, 비평준화지역인 고등학교에 가서는 생애 처음 반 10등 밖으로 넘어간 성적표를 받아 들고선 엄청난 좌절을 겪었다. 그리고 선생님이 꿈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2학기에는 다시 열심히 공부하여 반 3등이라는 성적을 얻었고, 다시 공부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꼭 선생님이라는 꿈보다는 문과에서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열망으로 교대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워낙 문학을 좋아해서 언어학부나 영문학과에 대한 꿈도 꾸었지만, 그 당시 학교 분위기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 것을 최고로 치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나는 교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나는 교대에 진학한 것이 정말 좋았다. 교대 4년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말해보라면, 짧게나마 공부방 봉사활동을 다녔던 것을 꼽고 싶다. 지역 내에서 저소득층 학생을 대상으로 무료로 운영하던 공부방에 대학생 자원봉사자로 다녔던 것인데, 이때 활동한 것을 영상으로 남겨 대한적십자사에서 대상을 타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으로 나는 어린이들하고 있는 시간이 즐거우며 가르치는 것도 자신 있고, 수업 결과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간과한 것은, 교사생활이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교사도 결국엔 공무원일 뿐이며 조직의 부품처럼 관료적이고 관습적으로 일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힘에 부쳤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상적인 교사상으로써 일하려면 주변 동료교사와의 관계 문제, 가치관이 다른 학부모와의 갈등, 무기력한 학생들과의 난항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은 교사 개인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고 뒷받침이 되어야 좀 더 수월하게 기능할 수 있는 문제였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교육의 모든 종착지는 대학 입시에 달려있다. 대학 입시를 위해, 도미노처럼 단계를 타고 내려와 초등학교에서도 오직 성적지상주의로 학생들을 문제풀이 교육만 시킬 것인가, 아니면 초등교육의 목표처럼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키우고 전인적인 성장을 추구할지의 양자택일에서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전자는 당장은 학생들의 불만과 좌절로 불행의 연속이지만, 후에는 그때의 담임교사에게 고마워한다고 한다. 성적지상주의에 빠진 학부모도 매우 환영한다. 후자는 당장은 학생들이 즐겁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지만, 후에 자신의 실패를 그때의 담임교사를 원망한다고 한다. 미리 사전에 각서를 받아놓을 수도 없고, 개개인 맞춤형 교육을 실현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이 둘을 조화시키면 제일 좋겠지만, 성적 줄세우기를 하면 결국 누군가는 1등을 하고 누군가는 꼴찌를 할테니깐, 매우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꿈을 꾸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깐 자신의 이상향, 자신이 믿는 것에 전념을 다하자는 말이다. 그 순간, 정말 아낌없이 진실되게 자신의 일에 매진하였다면, 나 스스로 부끄러운 마음이나 후회하는 마음이 없다면 떳떳한 것 아닐까? 교육의 결과는 성과로 나타내기가 쉽지 않다. 요즘에는 초등학교에서는 시험이 사라졌지만, 시험이 있던 시절의 교사의 능력을 가르는 성적 지표도 시험 수준을 쉽게 내버리면 얼마든지 능력 있는 교사로 비치는 게 가능했다. 그런 걸로 어떻게 능력을 가늠할 수 있을까. 


 직업이 교사든, 예술가든, 전문직이든, 정치인이든 간에 진짜 꿈을 이뤘고 유능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성장'이 눈에 띌 때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성장이 멈춰있을 때 죽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끊임없이 성장하지 않는가. 나무에 나이테가 늘어나듯, 우리 머릿속 생각과 지혜가, 마음속 공감력과 감수성이, 몸의 건강과 민첩성이 끊임없이 좋아질 때, 우리는 성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꿈꾼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김미경 강사와 드로우앤드류의 말씀처럼 지금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쓸모가 없어 보이더라도 내가 그것을 하는 것을 좋아하고 기쁨을 느낀다는 것 자체가 계속해서 추구할 추진력을 불어넣어 준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 한 달, 1년이 모이고 쌓여서 또 다른 나의 능력치를 계발하게 되고 느리더라도 언젠가 나에게 큰 보답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설사, 금전적으로 환원되지 않더라도, 난 그와 함께 커다란 기쁨의 시간을 보냈으면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사람들은 '꿈=돈'이여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 꿈과 생계가 일치하면 제일 좋겠지만,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지금 당장 생계를 위해 하는 노동도 소중하다. 법륜 스님은 즉문즉설 강연에서 작가를 꿈꾸는 질문자에게 정말 작가를 꿈꾼다면, 돈이 안되더라도,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하고 싶을 만큼 본인 스스로 즐기는 것이어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게 아니라면, 다 거짓이라고. 


 서두에 나는 꿈을 이뤘다고 적었다. 거창하고도 대단한 꿈은 아니지만, 결국 꿈을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았기 때문이다. 공부를 열심히 했고, 늘 책을 가까이했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물론, 여기에 운도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물론 시련도 꽤 많이 겪었다는 것을 볼 때, 마냥 운이 좋았다고만은 할 수 없다.(그러니깐 부러워하거나 깎아내리지 말기를...)



 내가 잠을 쪼개서라도, 돈이 되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를 고민해 본다면,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살면 좋을 것인지 가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매일 그것을 충실히 하면, 언젠가 자신이 꿈꾸는 모습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https://youtu.be/xg3YdIz6d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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