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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지옥', '꿈'에 대해 상담하다

조금 느리더라도 함께

by 루비


"선생님, 저는 지옥에 갈까 봐 너무 걱정돼요."


3월부터 시도 때도 없이 걱정에 사로잡혀 힘들어하는 학생 J가 있었다. 그 학생은 과도한 공포심과 걱정으로 시도 때도 없이 짜증을 내거나 폭풍 눈물을 쏟거나 징징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정하게 대해주고 들어주고 전담 교과 수업 시간에 손을 잡고 교실에 데려다주며 안심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이런 나의 노력을 알아주기보다 한순간만 마음이 상해도 교육청에 민원을 넣고 폭언을 퍼붓고 나를 힘들게 했다. 화가 나고 마음을 완전히 거둘까 봐도 생각했지만 아이의 말을 통해 이 아이의 부모님도 힘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고, 미워하고 탓하기보다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게 정말 교사인 내가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오후 4시에 하교하고 교과 수업을 모두 마치면 방과후수업으로 스케줄이 꽉 차 있어서 시간을 따로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돌봄 시간을 할애해서 일주일에 한 시간, 이 아이와 따로 상담을 하기로 했다. 독서치료와 상담을 병행하기로 했다. 내가 대학원에서 아동문학교육을 전공한 점, 그리고 나 또한 힘든 일이 많아서 상담치료를 오래 받은 점, 그리고 의미치료 상담을 공부한 점등이 이 아이를 상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아이는 기질적으로 특성이 많이 느린 아이다. 속도와 경쟁으로 대변되는 사회에서, 학교에서도 효율과 성과에 집중하다 보니 늘 뒤처지는 아이 때문에 답답할 때도 많다. 하지만, 내가 기질적으로 예민한 감성을 지니고 있듯이, 이 아이는 기질적으로 느린 아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내가 다그치고 눈치 주면 얼마나 힘들까란 생각이 들었고, 처음에는 어머니가 나에게 화를 내고 전화로 따질 때마다 속상하고 화가 났지만, 이 아이를 좀 더 사랑으로 대하고 소중하게 대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얼마나 많이 힘들었으면 과도한 걱정과 트라우마로 힘들어했을까라는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악마와 미스프랭.jpg 악마와 미스프랭, 파울로 코엘료 저, 문학동네 출판사



오늘은 이런 마음가짐으로 차분하게 아이와 천국과 지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봤다. 몇 주 전부터 계속해서 내게 지옥에 갈까 봐 걱정된다고 하던 아이였다. 내가 대학생 때 읽었던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악마와 미스 프랭>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나도 인상 깊어서 따로 타이핑해두었었다. 천국을 도용한 지옥은 말과 개 등 친구들을 배신하는 곳이지만 천국은 친구들을 저버리지 않고 함께하는 곳이라는 줄거리다. 또다른 한 이야기는 죽은 뒤에 면도날처럼 가는 다리를 건너는데 오른손에는 공덕을, 왼손에는 죄악을 들고 지나는데, 오른쪽으로 떨어지면 천국으로 가는 통로, 왼쪽으로 떨어지면 지옥으로 가는 통로라는 줄거리다. 이 이야기를 읽고 어쩌면 이 아이가 느리다고 다그치고 빨리하길 바라는 마음이, 우리보다 조금 부족한 친구를 배신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란 생각에 미쳤다. 그래서, 물어봤다.




"오늘 점심시간에는 왜 짜증을 냈어?"


"선생님께서 빨리 오라고 해서 힘들어서 짜증이 났어요."


"조금 더 속도를 내는 게 많이 힘든 일이야?"


"아니요. 그렇진 않아요. 선생님, 우는 것도 나쁜 거예요?"


"속상하면 울 수는 있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울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나쁜 일이 될 수도 있지."


"저 이제 노력해 볼게요. 빨리하려고 해볼게요."


"정말? 힘들지 않겠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일주일만 노력해 보자. 그래도 안되면, 선생님과 친구들이 J의 속도를 맞춰서 조금 천천히 가볼게."


"네."



그리고 J는 연예인이 꿈이다. 가수가 꿈이었다가 배우가 꿈이었다가 명확하진 않지만 어쨌든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한다. 요즘에는 배우가 꿈이란다. 그래서 오늘 입고 온 블랙 앤 화이트 상하의가 모던하고 시크해서 세련된 느낌을 주고 골드 색깔의 안경테도 너무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고 머리카락도 곱슬머리고 파마한 것이 트렌디한 느낌을 준다고 폭풍 칭찬을 해주고 선생님 SNS 친구 중에 아역배우도 있다고 하였다. 선생님이 본 뮤지컬에 출연한 아역배우인데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배우의 꿈을 차곡차곡 밟는 친구도 있으니 지금부터 오디션을 준비해도 좋고, 꼭 공부뿐만 아니라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멋진 일이다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 목표를 위해서라면 짜증을 내거나 불평을 할 시간은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내가 예전에 보고 마음속에 담아뒀던 2+2=4(이해와 이해가 모이면 사랑이 된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J도 선생님과 친구들을 이해하고 선생님과 친구들도 J를 이해하고 한 발짝씩 양보하면 좋겠다고. 그럼 서로를 사랑하게 될 거라고. 그러니깐 J가 내게 자신이 먹고 있던 청포도를 세알을 주더니 마지막 남은 청포도도 주려고 해서 사양하니깐 기어코 반을 잘라 내게 준다.



사실 처리해야 할 업무도 많고 교과 수업 준비도 해야 하는데 일주일에 한 시간씩 시간 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다른 친구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고), 조금씩 변화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 다음에는 이 아이와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해진다. 오늘 아이에게 들려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속 천국과 지옥에 관한 이야기처럼, 늘 일상에서 천국의 일화를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데 바로 나부터 기여하는 멋진 일이 되지 않을까? 내 옆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놓치지 말고 소중히 여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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