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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

재직자가 신규자에게 보내는 격려

by 루비

안녕하세요. 신규발령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강산이 여러 번 바뀐 나름 경력교사입니다. 햇병아리 신규 시절을 지나 저도 어느새 나름 노하우가 생긴 선배 교사가 되었네요. 교사는 흔히 가르치려 든다는 오해를 사기도 하죠. 혹시라도 제 이야기가 그렇게 들릴까 봐 걱정되면서도 조심스럽게 제가 그동안 쌓아 올린 교육철학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제가 평탄한 길만 걸어왔다면 어쩌면 제 생각이 빈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많은 아픔과 시련, 고민을 겪은 뒤에 지금의 단단한 생각을 지니게 되었어요.


지금의 학교는 좋은 점도 많지만 많은 어려움도 있어요.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확고부동한 입시체제아래에서 선생님의 교육관을 펼치지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에요. 최근에 봤던 EBS의 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사교육 강사가 인터뷰이로 대거 참여하더라고요. 학생들도 학교에 대한 비판 일색이었고요. 그것을 보면서 공교육 교사로서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정말 학교의 존재 이유가 뭘까 하고 말이에요. 하지만 비판은 다르게 생각해 보면, 더 나은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일 수도 있잖아요. 무조건 학교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따끔한 조언을 바탕으로 우리는 더 나은 교육을 꿈꿀 수 있을 것 같아요. 매서운 채찍질에서 우리는 더 나은 교육에 대한 희망을 살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저만의 교육철학을 지금부터 풀어보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교사니깐 어린이에 대한 관점 위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첫째, 저는 어린이의 눈높이를 맞춰주었으면 해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가르치다 보면 학년성 및 발달단계에 따라 학생들을 대하는 방법이 달라져요. 1학년을 6학년 학생 가르치듯이 대할 수도 없고 6학년 학생을 1학년 학생 가르치듯이 대할 수도 없죠. 교사는 학생의 학년성 및 발달단계에 대해 잘 파악하고 그에 대해 능수능란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대생 시절 배웠던 교육심리학과 신의진 작가의 <초등학생 심리백과> 책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아이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교육하는 것이 바로 전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현재 3학년을 맡고 있어요. 예를 들어 3학년은 피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의하면 구체적 조작기에 해당하죠. 따라서 감각적, 구체적 사물을 이용한 수업, 체험 중심의 수업을 많이 하고요. 비고츠키의 이론에 따르면 비계설정이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어요. 저는 이에 학생들에게 과제를 제시할 때 유형이나 수준을 달리해서 제시하기도 합니다. 콜버그 도덕성 발달단계에 따르면 3단계인 착한 소년소녀 지향의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이론적 기반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바라보면 좀 더 이해가 쉬워요.


한 번은 간디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4분짜리 단편 영화 <The other pair>를 보고 활동지를 작성해 보았어요. 기차를 타다 구두 한 짝을 놓치자 나머지 한 짝도 부러워하던 소년에게 던져준다는 내용이에요. 마지막 질문이 ‘나라면 소년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요?’였는데 학생들 대부분이 그럴 수 없다고 대답했죠. 학생들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10살짜리 어린이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잖아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공감하고 인정해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살면서 점점 학생들의 도덕성이 성인(聖人)인 간디처럼 발달해 가는 거겠죠.


둘째, 어린이의 말을 믿어주었으면 해요. 어린이들은 거짓말을 많이 해요. 꾀병도 잘 부리고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모습을 보면 참 얄밉죠. 하지만 우리 어린 시절을 떠올려볼까요? 어떠셨나요? 우리는 정말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마냥 정직하기만 했나요? 가끔은 엄마 지갑에서 몰래 돈을 꺼내오기도 하고 혼날까 봐 무서워 밀린 일기를 거짓으로 쓴 적도 있지 않나요? 그렇게 깜찍하게 어른들을 속이기도 하면서 자란 우리가 어느새 정직하고 건강한 어른으로 자랐잖아요. 하지만 어른이 되면 어린 시절을 잊곤 하죠.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대부분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라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 서문의 한 문장처럼요.


그런데 어린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 모든 거짓말, 꾀병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은 아닐까란 생각이 들어요. 무력하고 나약하기만 어린이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인 거죠. 영화 <더 헌트>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파괴하는 거짓말이 아니라면, 그저 한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귀여운 거짓말은 때론 눈감아주고 속아 넘어가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도 어린이들을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 <사우드 오브 뮤직>에서 폰 트랩 대령의 아이들의 가정교사로 온 견습 수녀 마리아는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훔쳐올 수 있었답니다. 마리아를 골탕 먹이려고 개구리로 장난을 친 일도, 첫째 딸이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한 일도 숨겨주었거든요. 무조건 이실직고하는 것이 좋은 일일까요? 규율과 통제로 아이들을 구속하던 아버지에게서 진정한 자신을 찾게 해 주고, 노래와 자유를 체험하게 해 준 마리아를 따르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요?


저는 학교 선생님들도 이런 마리아처럼 아이들을 믿고 지지해 주는 열렬한 응원군이 되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야단치고 속박하기보다 아이들이 저마다의 날개를 펼 수 있도록요.


셋째, 수업은 늘 열정적으로 준비해주었으면 해요. 제가 존경하는 일본의 아동문학가이자 초등교사셨던 하이타니 겐지로는 매 수업을 특별방송처럼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공문과 씨름하고 각종 민원에 치여 사는 선생님들에게 어쩌면 매 수업을 특별방송처럼 준비한다는 건 엄청난 부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목표를 높게 잡고 이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그 이상에 도달해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어요. 소설 <큰 바위 얼굴>에서 주인공은 그저 하루를 충실히 살다 보니 어느새 동경해마지 않던 큰 바위 얼굴에 맞닿은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그런 선생님이 되셨으면 좋겠어요.


스스로 이런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저는 수업시간이 모자를 때가 많이 있어요. 평소 알던 내용, 지도서에 있는 자료들을 추가하다 보니 시간이 늘 부족하더라고요. 물론 모든 과목에서 그런 건 아니지만 최대한 모든 교과목을 철저히 준비하려고 노력합니다. 혹시라도 시간이 남을 때는 미리 준비해 둔 바른 글씨 쓰기나 독서, 수학 활동지를 하도록 해요. 꼭 이뿐만 아니라 미로 찾기 활동, 틀린 그림 찾기, 수학 퍼즐 같은 것도 학생들 창의력 신장에 도움이 많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수업을 하다 보면 시간을 맞추는 게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특히 공개수업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하지만 매 수업에서 노력하면 조금씩 훈련이 되는 거 같아요. 시간이 남을 시 어떤 활동은 늘리고 시간이 부족하다면 어떤 활동은 줄이는 식으로요. 저는 수업 말미에 ‘오늘 수업을 통해 알게 된 점 또는 느낀 점’을 발표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 데 이것도 유용한 팁이란 생각이 드네요. 시간이 부족하면 몇 명만 언급하고 넘어가지만 조금 여유가 있을 때는 모두가 발표해도 좋고요. 행여라도 누군가 쑥스러움을 타서 발표하기를 주저한다면 OX퀴즈식으로 수업을 정리해도 좋고요. 수업을 어떻게 구성하고 짜임새 있게 만들어나가는지는 교사의 역량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바로 그러한 것이 전문성과 연결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넷째, 단점보다는 장점을 봐주었으면 해요. 루시모드 몽고메리의 소설 <빨강 머리 앤>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천사가 와도 레이첼은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요. 레이첼 린드 부인은 소문을 퍼뜨리고 남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아무리 성스럽고 고귀한 천사라고 해도 눈에 불을 켜고 결점을 잡으려고 하는 사람을 이길 수가 없다는 뜻이에요. 하물며 우리 어린이들은 아직 어리고 이제 막 성숙해 가는 과정에 있는데 하나하나 모자란 점만 본다면 그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저는 때로는 눈감아주고 모른 척해주는 것도 하나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소심한 아이는 섬세한 것이고, 과묵한 아이는 신중한 아이며, 장난기가 심한 아이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다. 단점을 장점으로 봐주는 것도 아이들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바르게 성장하는 데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 늘 콤플렉스였어요. 그래서 사람들과 오해를 빚기도 하고 힘든 시간을 겪었어요. 그럴 때 우연히 읽은 책 한 권에서 제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 생각할 수 있었죠. 예민하고 까다롭지만 한편 섬세하기도 하다고 말이에요. 상담치료도 받기 시작했는데 상담사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저 같은 기질의 아이들이 학교에서 상처받을 때 공감력을 발휘하고 위로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는 것은 어떠냐고요. 절망의 늪에서 건져 올린 희망이었답니다.


선생님! 밉게 보면 잡초 아닌 풀 없고, 곱게 보면 꽃 아닌 사람 없다고 하잖아요. 아이들이 비록 단점도 두드러지고 미워 보일 때조차 고운 눈으로 그 아이의 장점을 발견해 주시는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셨으면 좋겠어요.


다섯째, 아이의 힘든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해요. 제가 앞서 언급한 하이타니 겐지로 작가의 <손과 눈과 소리와>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나와요. “공부할 수 있는 놈은 공부를 할 수 있게 해 준 선생을 좋은 선생이라고 하지만, 슬픈 일이 하도 많아서 공부 따위가 손에 잡히지 않는 놈은 슬픈 일을 같이 걱정해 주는 선생이 좋은 선생이잖아. 우리 학교에 그런 선생 있나?”


저는 대학생 때 처음 이 문장을 읽고 많은 생각에 사로잡혔었답니다. 가정환경이 어렵거나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여러 가지 적응이 힘든 아이들은 학교를 중도포기하거나 부적응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어디에도 기댈 곳도 없고 혼자 고군분투하다 비행서클에 가입하거나 학교 밖 청소년이 되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기본적으로 학교는 공부를 하러 오는 곳이기에 공부만이 전부인양 호도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부만을 강요하는 건 아이의 심리상태를 더 불안하게 만들고 바른 인격 형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좌절감, 슬픔, 분노, 불안 등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표출할 가능성이 많으니깐요.


제가 작년에 맡았던 학생 중에는 아침을 굶고 와서 배고프다고 떼쓰기도 하고 화가 나면 충동적으로 교실 밖을 뛰쳐나가던 학생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 아이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무슨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요. 하지만 최대한 그 아이 입장에서 공감해 주고 이해해 주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런 부적응 행동이 많이 줄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만약 무조건 강압적으로 통제하려고만 했다면 활화산처럼 어디로 폭발할지 모르는 그 아이가 어떤 행동을 저질렀을지 아찔합니다.


삶에는 부산물처럼 기쁨과 함께 슬픔도 따른다고 합니다. 어린이라고 예외는 아니겠죠. 그 아이들에게 부모님 다음으로 가장 많이 만나는 선생님들께서 안전지대가 되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여섯째, 무조건적인 사랑이 전부는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해요. 앞서 다섯 번째와는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제가 아이의 슬픔과 분노를 이해해 달라고 했다고 해서 무조건 모든 떼쓰는 것을 받아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영애 작가의 <아이의 사회성>에서는 아이 양육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더라고요. ‘엄마가 아이의 욕구를 다 들어줘서 만족스러운 경험을 너무 많이 해도 자존감이 낮게 형성될 수 있습니다’라고요.


가정에서 자녀 양육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을 교육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당근과 채찍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아이들에게 사랑과 배려로 보듬어줄 땐 보듬어주더라도 따끔하게 훈육할 때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적정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 학생과 선생님 사이의 권위는 무너지고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게 됩니다. 제가 바로 그랬거든요.


아이 한 명 한 명마다 생일파티를 챙겨주고 친근하게 SNS에 답글을 달아주고 친구처럼 지내던 일들이 결코 하나도 도움이 되질 않더라고요. 오히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비교하며 불평불만이 느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는 적절한 거리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에서처럼 말이죠.


물론 조선시대처럼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 까지는 아니지만 너무 많은 사랑을 퍼주는 것은 학생들에게 자칫 선생님은 막대해도 되는 존재라는 무의식적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생님들께서는 학생들과의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무조건적으로 베풀기보다 흔히 말하는 밀당을 하며 아이들과 행복한 관계를 맺어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지난 교직생활동안 깨달은 여섯 가지 교육관에 대해서 이야기를 펼쳐보았어요.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기, 어린이의 말 믿어주기, 수업은 늘 열정적으로 준비하기, 단점보다는 장점 봐주기, 아이의 힘든 마음 알아주기, 무조건적인 사랑이 전부는 아님을 알기요.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자 했지만 다 쓰고 나니 부끄러워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심정이네요. 저의 생각이 모두 다 정답은 아니고 저 또한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생각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다듬고 고쳐나가면서 한 명 한 명 아름다운 교사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과 행복한 교육을 해나갈 때 우리나라의 앞날에도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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