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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아이들의 자유와 행복을 지켜줘야 합니다

by 루비

더 늦기 전에 아이들의 자유와 행복을 지켜줘야 합니다



요 며칠 사이에 뉴스를 보면 땅에 떨어진 교권에 참담함을 금치 못합니다. 뉴스에서 벌어진 일은 생경한 일이 아니라 저도 지나온 교직생활에서 다 거쳐온 일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 저는 누구에게도 보호를 받지도 도움을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홀로 헤쳐온 일들입니다. 물론, 학급이 무너졌을 때, 몇 번 저희 반에 들어와서 훈계를 해주신 선생님도 계시고 조언을 해주신 수석교사선생님도 계십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돼주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임시방편에 불과했고 제가 진짜 원하는 정통한 교육이란 게 무엇인지 저는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가장 큰 불찰은 제 책임도 있고 능력부족이란 생각에 자괴감과 불안, 우울을 달고 살았고, 수많은 동료교사들의 조롱과 비난을 받은 채 혼자서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상담치료로 연명하였습니다. 물론 반대편에서 큰 지지와 위로를 보내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큰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극단적 선택을 하신 선생님의 정확한 사유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언론과 SNS에서 악성민원이 주원인이라고 떠들어대기에 그런가 보다 하며 제 과거 기억을 떠올릴 뿐입니다. 저도 그 선생님과 마찬가지로 1학년 학급 담임을 맡았을 때 경미한 학교폭력 사안이 일어났고 학부모부터 ‘뺨을 때리고 싶다’는 모욕적인 말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전해 들어야 했습니다.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은 관리자로서 지원과 도움을 주는 위치가 아니라 저를 경질하는 위치에서 학급 운영을 시시비비 할 뿐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런 일련의 시간들로부터 나는 고독한 섬이고 그 어느 누구로부터 위로도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교사가 아닌 일반인 친구들은 그저 배부른 투정으로만 볼 뿐이고 같은 동료 교사들, 친했던 사람들은 자기한테 불똥 튈까 봐 손절해야만 하는 사람 취급을 했습니다. 사표를 심하게 고민했던 제가 그래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그렇게 무너지고 심각한 위기에 몰리기 전, 관리자로부터도 인정받았고 지나가다 만난 학부모님께 아이 덕분에 너무 행복하다고 말할 정도로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낸 기억이 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저를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주었습니다.


밥상머리 교육이니 베갯머리 교육이니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많이들 말합니다. 그리고 학교에는 가정교육이 잘 된 학생들이 와서 교육을 받아야지 보육기관이 아니라고들 말합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교육은 과도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촌지와 체벌로 점철된 과거 교육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하는 미래의 교육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교권과 학생 인권이 충돌하고 교권 침해와 아동학대로 얼룩진 아수라장이 된 교육현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과거의 문제 교사들도 줄어들고 있고, 학생 인권도 많이 보장되고 있는 과정에서 아직 합의가 덜 된 부분이 서로 충돌을 일으켜서 악성 민원과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문제가 결국 자유와 행복이 보장되지 않아서 생긴 문제라는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이것도 지시하고 저것도 지시하고 통제하려 듭니다. 급식 지도 하나를 예로 들어도 학부모마다 요구사항이 다르고 교사는 자신의 교육관을 고수해 나가거나 수긍하거나 우왕좌왕하거나 하게 됩니다. 어린이들은 미성숙하기 때문에 교사가 가르쳐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초등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의 급식 지도 시 골고루 먹기와 반찬 남기지 않기의 강요를 듣는 척하고 식탁 아래로 온갖 반찬을 버리는 학생들을 목격했습니다. 통제와 강요는 반드시 부작용을 불러옵니다.


그렇다면 급식 지도를 내버려 두냐, 자유롭게 먹게 놔두면 편식만 하지 않느냐, 방임 아니냐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급식실에서 학생들을 점검하고 통제하는 것으로 지도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실과 시간이나 체육 시간, 창체 시간 등을 통해 고른 식습관과 건강의 관계를 교육하는 것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에는 학생들의 몫입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마다 관심분야가 다르고 흥미를 끄는 일들이 다릅니다. 학교에서는 시간표가 정해져 있고 모든 과목을 일률적으로 가르칩니다. 앞으로는 교사 교육과정이 점점 더 확대된다는 기대하에 지금의 수업도 학생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수업을 진행할 때 최소 두 개 분량 이상으로 준비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예상하기로 학생들의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을 우려해 다른 대체 수업을 하나 더 준비하고 학생들에게 선택하도록 합니다. 그럼 어떤 수업도 학생들이 반발하는 경우는 줄어듭니다. 그리고 좀 더 자신들의 자율성이 보장된다고 느끼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 안에서 학생들은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낍니다.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은 1859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소수의 의견도 중요하다는 것과 자유와 행복을 중요시합니다. 다수의 의견만을 강조해 독선과 독단으로 치우치는 것을 경계합니다. 지금까지 학교는 학생을 통제와 규율로 엄하게 다스려왔습니다. 하지만 더는 그런 낡은 방식으로는 학교에 만연한 문제들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적대적으로 대하거나 훈수만 둘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소수자의 의견, 상대방의 의견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합니다. 다수가 언제나 진리가 아니며 먼 훗날은 소수자의 의견이 진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학교에 자유행복이 만연해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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