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위로
일렁이는 강 물결을 바라보니 마음이 고요해진다. 여기는 북한강이 자리한 깊은 산골짜기. 반짝이는 수면과 그 위의 구름은 세상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상기시키며 저 먼 우주로 시야를 확장한다.
칼 세이건이 말했던 창백한 푸른 점 위의 인간은 뭐가 그리 아웅다웅이고 서로를 헐뜯지 못해 안달일까. 우주에서 바라보면 먼지 한 톨밖에 안 되는 인간들이 자연을 거스르고 세상을 거스르고 아집을 내세운다. 하늘을 향해 세운 높다란 타워, 매일같이 벌어지는 정치인들의 싸움, 뉴스를 장식하는 강력 사건들이 온 지구의 소음이 되어 몸살을 앓게 한다.
“네가 불쌍하대.” 정말로 친하다고 믿었던 친구에게서 날아온 화살 한 마디. 나의 어떤 점이 불쌍한 걸까?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아서일까? 고독한 내면을 간직해서일까? 그러한 모습들이 초라해 보인 걸까? 난 이렇게 행복한데…. 난 이렇게 즐거운데…. 그들은 나에게서 어떠한 점을 발견한 걸까?
독불장군이 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세상의 소리에 귀 닫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난 자연과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을 뿐이다. 내면의 본질에 충실한 삶, 찌꺼기를 제거한 삶의 정수를 만끽하는 삶, 이 세상을 창조한 신과 가까워지는 삶. 월든 호숫가를 거닐었던 소로처럼, 고독을 찬양했던 릴케처럼 그렇게 투명하고 진실한 삶의 내부로 들어가고 싶은 것뿐이다.
세상의 이목에, 평판에, 물질에, 소유에 집착하는 삶이 아닌,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삶. 나는 그러한 삶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나 보다.
나는 나를 위로한다. 북한강 물결을 바라보며 고요한 나의 마음속으로 침잠해 들어갈 수 있었다. 살갗에 스치는 바람, 주기적으로 흔들리는 강물 소리, 옅은 수채화처럼 하늘을 수놓은 구름이 모여 평범한 삶에 마법을 부린다. 그렇게 우리는 초인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제 나는 내 안에서 용솟음치는 마음을 따라서 세상으로 전진하고자 한다. 그동안의 가난, 설움, 고통, 차별, 핍박 그 모든 것을 딛고 세상을 향해 선의 꽃씨를 뿌리기를. 앞장서서 변혁의 나팔을 불기를. 눈가에서 뚝뚝 떨어지던 눈물방울은 어느새 희망의 씨앗으로 탈바꿈한다. 그렇게 나와 우리, 세상을 위로한다.
김삿갓 백일장에 제출했던 산문 원고. 운문과 동시 제출하여 운문 부문에 당선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