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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Aug 31. 2023

반짝이는 아름다운 수필집

브라이언 도일의 <찬란한 존재들>



 반짝이는 언어와 이야기로 가득한 아름다운 한 편의 수필집. 브라이언 도일의 <찬란한 존재들>을 이렇게 묘사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이 에세이집을 읽으며 내 마음이 보석으로 단련되는 기분을 느꼈다. 보잘것없고 비루하고 때론 어리석기까지 했던 내면이 담금질을 거쳐 반짝반짝 아름다워지는 그 길목을 그리고 있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기의 치부, 어리석음, 실수를 가감 없이 밝히며 또한 깨달음과 성장의 과정도 수려한 필체와 언어로 보여주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동생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는 악동이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성소수자를 야유하고 조롱했던 치부를 드러낸다.     

      

우리는 바닷가에서 동생을 턱까지 모래에 파묻었다. 할머니가 그 아이만 금지옥엽으로 애지중지하고 우리는 복숭아 꽁다리, 쭈그러진 감자, 썩은 배 껍질 취급한다고 느꼈을 때는 그 애를 퉁명스럽고 무뚝뚝하게 대했다. 우리는 그렇게 했다. /본문 27쪽     
나는 동성애자들을 조롱했다. 진짜로. 그들의 짧은 머리와 춤추는 듯한 걸음걸이와 화려한 몸단장을 야유했다. 자신들의 권리에 발끈하는 태도에 조소했다. 그랬다. 디스코를 발명했다고 비방했다. 그들의 깃털, 반짝이, 향수, 제복처럼 입고 다니는 몸에 꽉 끼는 의상을 멸시했다. 퀴어 프라이드 펄이드의 거창함을 보고 실소했다. 스톤월에서 경찰과 난투극을 벌인 게이들을 비방했다. 그래 봤자 싸우는 시늉이나 하다가 말았을 거라고 은근히 깎아내리면서. 
..
나는 어리석었다. 나 자신이 형편없는 웃음거리였다. 자비와 사랑과 배려와 겸손과 관용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으나 그것들은 내 입에서 공허하게 시들었다. 더 이상은 그렇게 하지 않겠다. /본문 111쪽     


 하지만 브라이언 도일은 지난날의 자신을 어리석다고 밝히며 이제는 달라졌음을 고백한다. 그런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많은 편견과 혐오를 가진 인물들을 이해하게 되며 일말의 희망을 기대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스럽기만 한 인물이 얼마나 많겠으며, 그것은 너무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니깐. 좀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자녀에 대한 사랑도 가슴 뭉클하다. 요즘은 출산율이 0.7명으로 역대 최저치라고 하는데 저자의 자녀에 대한 묘사를 읽어나가면 누구나 자녀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거리게 될 것 같다. 존재만으로 천사처럼 느껴지는 작고 소중한 아이들, 순진무구한,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 가정을 일군다는 행복의 이미지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보여준다.


우리가 눈만 똑바로 뜨면 천사는 어디에나 있는 듯하다. 그들은 꾸밈없고, 유쾌하고, 끈질기고, 화사하고, 찬란하여 어찌해도 숨겨지거나 감춰지거나 걸러지지 않는다. 가장 편협하고 소심한 사람들조차 이따금씩 그들을 알아보듯, 제대로 보는 눈만 있다면 그들이 누구인지 곧바로 깨달을 수 있다. 생기 있고 청초한 겉모습을 입은 거룩하고도 하찮은 빛의 존재들임을. 그들이 당신의 스승이자 무한한 사랑을 전하는 대리인, 경이로운 사촌과 동료임을 벅찬 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들은 기적이요, 기도요,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노래다. 아무도 설명할 수 없고, 아무도 소유하거나 요구하거나 구속할 수 없으며 그저 인식하기만 해도 형언하기 힘든 축복을 안겨 주는 존재다. /본문 31쪽          


 또한, 때론 어떤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주관과 신념을 확고히 내비치기도 한다. 신념을 지킬 용기가 없다면 그저 빈 수레, 투명 인간, 속 빈 강정, 바람만 잔뜩 든 영혼, 탁월풍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쨍그랑거리는 풍경, 아무 치수도 무게도 특징도 없는 존재일 뿐이라며 쓴소리를 한다. 강인한 절개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이런 야성 찬 모습 외에도 평화의 사람들, 덤불의 사람들인 ‘다나 시’의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 깨끗하고 순수한 모습도 드러낸다. 다나 시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마음과 믿음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어떤 신비한 존재인 것 같다.     



형에게는 신념을 지킬 용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당신에게 신념을 지킬 용기가 없다면 당신은 그저 빈 수레, 투명 인간, 속 빈 강정, 바람만 잔뜩 든 영혼, 탁월풍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쨍그랑거리는 풍경, 아무 치수도 무게도 특징도 없는 존재일 뿐이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본문 136쪽 


나더러 우리 딸의 머리에 황당무계한 생각을 주입하고, 쓸모없는 전설과 우화와 신화로 현혹시키고, 세상에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잘못 가르쳐 아이를 오해에 빠뜨렸다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대꾸하겠다. 그러는 당신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 어떻게 아는가? 우리 주위의 보일 듯 말 듯하는 곳에 당신의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존재가 있을 리 없다고 어떻게 그토록 확신하는가? 그리고 어찌 됐든, 어떤 이유, 어떤 구실로든, 가능한 한 오랫동안, 세상이 아이의 황홀하고 열렬한 상상력 주위로 울타리와 담장을 치기 전에, 아이의 마음을 기쁨으로 채우는 것이 뭐가 나쁜가? /본문 146쪽


 우리는 삶을 치열하고도 맑고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인정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관조적으로 내뱉는 그의 말에서 인생을 통달한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결국 그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사랑이고 결국 그 밑바탕은 겸손이었던 듯하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성경구절처럼 그는 진실되게 겸손과 사랑을 실천하다 천국으로 돌아간 아름다운 영혼이었다.          

나는 이렇게 알고 있다. 작은 것은 크고, 사소한 것은 거대하며, 고통은 기쁨이라는 선물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이며, 사랑이 있기에 다른 모든 것이 있다. 숨을 쉴 때마다 당신은 사랑을 향해 다가가거나 사랑으로부터 멀어진다. 겸손은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겸손이 곧 사랑일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나는 잘 모른다. 나는 혼란스럽고 어리둥절한 사람이니까. 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이면서, 경이로움에 감탄하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고 말하려 하며, 길을 따라 쓰레기와 부스러기 같은 자아의 파편을 남기려 할 뿐. /본문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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