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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Sep 12. 2023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박하경 여행기 <5화>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떠나는 딱 하루의 여행     

걷고 먹고 멍 때릴 수 있다면    

   



<스포가 있습니다-!>    




      

 이번 5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공감이 많이 갔다. 드라마를 그렇게 자주 보지 않는 내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가득하다. 하경은 우연에 기대어 대전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혼자 간 만두전골식당에서 정말 거짓말처럼 자신이 너무나 좋아했던 만화책의 원작자, 구영숙을 만난다. 혼자 왔던 둘은 2인분밖에 주문이 안 되는 만두전골 식사를 함께 하게 되고 작업실로, 천문대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만화가 구영숙은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한 몸을 한탄하며 가끔 뭘 위해 그리 하나에 미친 듯이 살았는지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 데라고 말한다. 하지만 하경은 그런 그의 자조 섞인 한탄에 감탄과 추앙으로 응수한다.     

대단한 거였어요. 정말 대단했어요. 그리고 지금의 저를 형성하는 데 아주 큰 영향을 끼치셨죠.
어릴 때는 아무도 내 편이 아닌 것 같잖아요. 세상이 나만 전혀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고. 혼자 너무 외롭고. 가끔 막 미칠 것 같고.
근데 제 편이었어요. 제 편 해주셨어요. 작가님 작품이.     


 하경의 대사를 듣고 나도 곰곰이 떠올려봤다. 하경의 10대에 구영숙 작가의 <춤추는 캥거루>가 막대한 영향을 끼쳤듯 나의 10대는 무엇에 영향을 받았는지. 나 또한 만화책을 좋아해서 만화책들을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내가 봤던 만화책은 <풀하우스>, <환상게임>, <소년탐정 김전일>, <하늘과 바다사이>, <사랑하는 지금>, <빙글빙글 폰다는 변신 중> 등이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 만화가 1세대인 강풀의 <순정만화>도 고3 수능 끝나고 봤던 만화다. <소년탐정 김전일>이 추리만화인 것 빼고는 전부다 로맨스 혹은 로맨스 판타지라서 순간 나의 정체성에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순정만화를 너무나 좋아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떠올려 본 것은 소설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 읽었던 소설 중 강렬한 전율을 느꼈던 소설은 미우라 아야꼬의 <빙점>이다. 사랑과 속죄에 관한 이야기가 내겐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재미있기도 하고 어둡기도 하고. 심연을 두드리는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기억에 남는다. 이것도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살인을 정당화하는 라스콜리니코프와 그를 사랑하는 몸을 파는 여자 소냐. 지나고 보니 나는 감수성이 뛰어난 건지 특이한 건지, 여고생 감성이 두드러진 것 같다.   

  

 그리고 기억나는 건, 귀여니의 소설 <늑대의 유혹>도 참 재밌게 봤었다. 서점 아저씨의 추천으로 보게 된 것인데, 인터넷 용어가 쓰인 10대가 쓴 소설이라는 게 참신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때 함께 샀던 책이 틱낫한의 불교서적이었는데 여러 가지로 마음의 평화를 안겨주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수능 끝나고 본 책은 내가 여러 번 밝힌 바 있는데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다. 나는 그 이후로 대학생 때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을 여러 권 찾아서 읽었고, 아주 존경하는 작가다. 일부 파울로 코엘료를 깎아내리는 작가들이 있는데 아마도 전 세계 2억만 부 이상 판매고를 올린 세계적 작가라 질투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파울로 코엘료의 영성과 신비주의에 매료됐다.     


 구영숙 작가는 젊어서 일에만 파묻혀 살아서 이제는 안 해본 것을 많이 해보고 싶다고 그래서 혼자 맛집 앞에서 줄도 서보고 천문대도 가본다고 한다. 사실, 나는 해 보고 싶은 건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해 본 것 같아서 삶에 후회나 미련은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다음의 대사는 꽤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래서 아셨어요? 수학의 아름다움?
어려워. 너무 어려워. 평생 해도 모를 것 같아.
그래도 좋은데요. 계속 뭐라도 궁금한 게 있는 거잖아요.    
하경 씨는요? 평생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한 일 있어요?
춤이요. 한 번도 제대로 춤을 춰본 적이 없어요.
아, 춤이요.
그냥 춤까지 갈 것도 없고요. 몸을 제대로 움직여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뭔가가 계속 궁금하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다. 지적 호기심이나 탐구심 같은 것들이 삶을 자극하고 추동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다. 나도 뭔가 계속해서 배우고 싶고 알아가고 싶다. 언젠가 시간 내서 박하경 여행지를 따라 여행해보고 싶기도 하고, 등단 등 여러 가지에 많이 도전해보고 싶다. 나 또한 박하경처럼 춤을 배웠던 적도 있다. 뮤지컬도 했었고. 단기로 배워서 잘은 못 추지만, 가끔은 춤도 추고 싶다.      


 삶이란 건, 넓고 넓은 우주처럼, 깊고 깊은 심해처럼, 아직도 모르는 게 너무나 많아서 매력적인 것 같다.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양파껍질처럼, 내 영혼도 계속해서 새로운 것들로 살찌워야겠다.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가끔은 한 템포 쉬어가면서.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는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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