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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에도 또 맡아주세요!

선영이와 승윤이

by 루비


우리반은 모두 3명이다. 담임 선생님인 나까지하면 모두 4명. 이것도 2학기에 승윤이가 전학와서 그렇지 그전에는 나까지 모두 3명이었다. 내 9년간의 교직생활 통틀어 가장 적은 수의 학생 수. 학생이 2명일 땐 실제로 반이 매우 조용하고 정적이었는데 한 명 더 전학오고 나서 몰라보게 반이 활기차게 변했다. 그래도 여전히 용훈이는 조용하고 과묵하긴 하지만 선영이와 승윤이의 변화가 놀랍다.


2학기에 승윤이가 전학온지도 어느덧 두 달. 오늘 점심을 먹는데 승윤이가 “선생님 내년에도 저희반 맡아주세요.”라고 하는 것! 그러자 옆에서 선영이도 거든다. “저도요.” “.....” 용훈이는 말이 없다. 어쨌든 두 아이의 말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기뻤다. 속마음을 감추고 “다양한 선생님을 두루 경험해봐야지.” 라고 하니깐 “선생님은 우리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잖아요. 다른 선생님은 무서워요.”라고 한다.


나는 정말 작은 학교가 천성에 맞나보다. 큰 학교에 있을 때는 서른명 남짓의 아이들을 다루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작은 학교에 있을 때의 경험을 살려 아이들에게 최대한 허용적이었고 귀 기울여주고 들어주었건만 어느새 아이들은 교사인 나의 허용선을 넘고 요구사항이 넘쳐났으며 함부로 하기 시작했다. 책과 연수에서 배운 교육기법들을 적용시켜봤지만 말썽꾸러기 아이들에게는 도무지 먹혀들지가 않아서 좌절했었다. 그런데 지금 천사같은 우리반 3명의 아이들에게는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쏙쏙 전달되고 있다.


2011년 2년차 때도 산촌지역 작은 학교에서 1학년 5명을 맡으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던 나였다. 그러다가 도시로 나온 후, 4년간 큰 학교에 머물며 학교폭력, 왕따, 교권침해 등 크고 작은 여러 후폭풍을 겪으며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었는데 시골의 작은 학교로 돌아와서 다시금 행복을 찾고 있다.


물론 내가 좀 더 전문성 있는 교사고 노하우가 쌓이면 도시의 큰 학교에서도 능수능란하게 대처하며 따뜻하고 평화로운 반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이전에는 우락부락 몸집이 크거나 목소리가 우렁차고 엄하게 꾸짖는 선생님만이 그런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점차 깨달아가는 건 아이들을 매섭게 통제하는 건 질서정연한 반은 만들 수 있어도 아이들의 마음은 얻을 수 없다는 것, 존경심은 그와는 다른 문제라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이들에게 배움을 주고 모범이 되어 감화를 주는 선생님으로 남고 싶지 무섭게 통제했던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아이들의 편에 서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멋진 교사로 성장하기 위해, 지금은 우리반 아이들과 행복한 추억을 쌓으며 나의 실력을 차츰차츰 업그레이드해야겠다. 당분간은 이 3명의 아이들과 행복을 만끽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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