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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Sep 23. 2023

빈둥빈둥 시시껄렁하게 놀기

박하경 여행기 8화 <맞물린 경주>

사라져 버리고 싶을 때 떠나는 딱 하루의 여행

걷고 먹고 멍 때릴 수 있다면


박하경 여행기 8화 <맞물린 경주>



내가 경주를 맨 처음 가 본 것은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이다. 그때 전교 1등 하던 친구와 단짝이었던 나는 함께 문무대왕릉 앞바다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대가 되어서는 경주에 자주 가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많지만, 그중에서도 대학교 4학년 때, 임용시험 2차 시험을 치른 후 마지막 2주간의 실습을 마치고 혼자 자전거로 경주를 여행을 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한 나는, 오롯이 혼자 다녀 가장 아름답게 미화되었기에 더 기억에 남는 듯하다.


이번 8화에서 박하경도 혼자 여행을 한다. 하지만 혼자인 듯 혼자가 아니기도 하다. 왜냐면, 이미 오래전에 죽은 진솔이 여행 메이트로 함께 하기 때문이다. 한때는 너무나 매정하게 굴었던 자신의 옛 친구를 떠올리며 추억에 빠지고 후회하기도 하고 서글퍼하며 그리움에 빠지기도 하며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기도 한다.


어렸을 때는 친구라는 게 굳이 사귀지 않아도 되잖아.
굳이 학교 가면 다 있으니까 아 친구구나 하는 거지.
이제와서 새로운 친구 만들려고 하니깐 참 힘들구나 깨달았지. 그냥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하며 깔깔댈 사람이 없다.
나이 들면 들수록 사람 사귀는 게 어려워져.


경주 여행기이기도 하고, 우정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은 이번 화를 보면서 친구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꽤 많은 친구를 사귀며 느슨하게 넓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고, 소수의 친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여서 좁고 깊은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깐, 상대방의 부러운 점이나 결점, 거슬리는 점도 눈에 잘 띄어서 관계에 생채기가 나기도 쉽다. 그렇게 해서 멀어진 친구들도 여럿이다. 그래서 하경이 진솔을 회상하는 장면을 보며 나도 차례차례 옛 친구들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른 배경에서 자라 한 점에서 만났던 우리가 다시 어떤 지점을 지나 헤어졌듯, 앞으로도 차이점만 더 부각될 것 같기 때문이다.


진솔과의 시절은 참 쓸데없었다. 대단히 재밌지도 의미 있지도 않았다. 시시한 얘기나 하면서 빈둥빈둥 시간을 보내는 게 다였다. 그래서 즐거웠다.


그렇다고 추억이 없는 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한다. 과거의 경험이 자산이 되어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진솔은 나이 들수록 사람 사귀는 게 어렵다고 했고, 정말 그런 것 같긴 하지만, 시간이 더디 걸리더라도 분명 또 다른 친구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버킷리스트>처럼, 나이 들어서도 서로를 보완해 주는 최고의 친구를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나 자신을 성장시키고 좋은 사람이 되어서 좋은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


하경은 여행도 쓸데없다고 말한다.


나는 여전히 여행이 쓸데없다고 생각한다.
대단히 재밌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특별한 목적도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간혹 어떤 순간을 실감하는 게 다다. 그래서 즐겁다.


첫 문장은 동의하지 못했지만, 결국 하경의 말에 동의하게 된다. 여행이 쓸데없든 유의미하든, 그냥 여행이라서 좋다. 여행은 준비전부터 시작해서 다녀오는 그 시간, 그리고 그 후의 기억을 다시 복기하는 일까지 즐거운 일 한가득이다. 그래서 우리는 휴가를 내서 여행을 떠나곤 하나보다.  쓸데없는 이야기를 깔깔거리며 함께 즐거워할 친구들과 일상을 여행하듯이 보낸다면, 그리고 때론 진짜 함께 멀리 여행을 떠난다면, 더욱 하루하루가 행복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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