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 작가의 그림책 <거짓말>을 읽고.
태경이가 규리의 발을 걸라고 시켰다. 하지만 나는 싫다고 했다. 곧이어 규리가 넘어졌다. 규리는 노발대발하며 누구냐고 했고 태경이는 나를 지목했다. 그날로 나는 규리의 발을 걸어서 넘어뜨린 나쁜 아이로 불려 갔다. 선생님과 규리 엄마, 그리고 엄마한테 혼이 났다. 하지만 나는 하지도 않은 일로 잘못했다고 할 수 없어서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자 맹랑한 것, 사이코패스 같은 것이라고 욕이 날아왔다. 그 이후로 수많은 하지도 않은 일들로 욕을 먹고 괴롭힘을 당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내 편이 아니었다. 나는 잘못하지도 않은 일로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서 고립되고 외톨이가 되어있었고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그들은 내가 사이코패스라고 말하지만 내가 볼 땐,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사이코패스다.
미안 작가의 그림책 <거짓말>을 읽고. 주인공 입장에서 써 본 일기.
내가 이 그림책을 서른 살에 읽었다면 펑펑 서럽게 울었을 것이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 같아서. 주인공의 이름은 등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 그림책이 더 서럽게 읽힌다. 존재마저 희미했던, 그래서 늘 뒤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지만, 영악하고 간교한 태경이의 덫에 걸려 한없는 아픔과 슬픔 속으로 빠져야 했던 한 어린 영혼이 보인다.
주인공은 계속되는 따돌림과 괴롭힘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거짓 자백을 한다. 경찰의 강압수사도 떠오르고, 우리 주변의 수많은 잔혹한 사람들의 냉대가 떠오른다.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할 땐 언제고 거짓으로 자백하니깐 그제야 잘했다고 칭찬하고 환호한다. 대다수 사람은 자신들이 진실을 알고 있다고, 진실을 파헤칠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그들은 진실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한다. 그냥 믿고 싶은 대로, 보이는 대로 그게 진실이라고 믿으며, 자신들의 분노와 화와 열등감을 표출하고 해소할 뿐이다. 그렇게 아무 죄 없는 영혼이 돌팔매질에 맞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그림책을 읽었을 때 그렇게 서럽게 다가오지 않은 건 다행이다. 여전히 무서울 때, 막막할 때, 아플 때 많지만, 지금은 내가 그만큼 더 단단해지고 힘이 세졌으니깐. 열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 타지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공격에 무방비로 당할 만큼 더는 약하지 않으니깐. 앞으로 나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머리채를 잡아끌든 밀어서 넘어뜨리든, 욕설을 내뱉든 다 되갚아줄 거다. 바로 내가 당했던 것처럼. 나에게는 숨겨온 발톱이 있고, 나는 얼마든지 그것을 드러낼 수 있으니깐.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는, 탁한 강물에서 더 넓은 바다로 헤엄치고 있다는 것. 작은 오리에서 우아한 백조로 비상하고 있다는 것. 나는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고, 그리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