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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로운 경험으로 만들어진 나라는 교사

나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by 루비


오늘 첫 모임에서는 나라는 존재를 이룬 것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 영향을 끼친 선생님, 그리고 나는 언제부터 선생님을 꿈꾸었는가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 시간들이 결국 나의 교육 철학을 되돌아보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소그룹 모임 후 진행자 선생님께서 마지막 질문으로 선생님으로서 나라는 존재를 색깔이나 단어, 물건 등으로 표현해 보라고 하셨다. 그때 퍼뜩 떠오른 생각이 무지개 색깔이었다. 나는 무지개색이 너무나 좋았다. 좋아하는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 나에게 하나의 색깔을 고르기란 퍽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무지개색은 적합한 색이었다. 초등교사는 전 과목을 다 어울러서 가르치고, 교과 간 융합과 재구성 등을 통해 자기만의 색깔 있는 수업을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수업을 위해서는 다채로운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깊이 심사숙고해보진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전 교과를 다 가르치는 초등교사에게 매력을 느꼈던 건 아닐까? 국어, 수학, 사회, 과학, 영어, 미술, 음악 등 모든 과목을 수업하는 것들이 재미있다. 물론 그중에 더 재미있는 과목도 있고, 수업 시간이 되면 약간 부담이 느껴지는 과목도 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다 재밌다. 이런 나에게 전 교과를 가르치는 초등교사는 정말 적성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다. 하지만 빠르게 도시화되는 시골이라서 중학생 시절부터는 자연의 정취를 느끼기 조금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 초등학생 때 경험은 아주 아름다운 기억으로 채색되어 있다. 우리 집은 단독주택으로 집 앞에는 포도송이 넝쿨이 자라고 있었고, 마당에는 여러 나무와 원두막이 있었다. 나와 내 동생은 학교를 마치고 매일같이 동네 친구들과 쏘다니며 놀러 다녔다. 마을 주민들이 모두가 잘 아는 사이라 위험한 사람을 걱정할 일도 없었다. 실제로 우리 마을은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그런 시골 마을에서 자연을 맘껏 만끽하며 자란 건 아주 행운이었던 것 같다. 봄에는 개나리며 진달래를 구경하러 다녔고, 여름에는 개울물에서 물고기와 놀았고, 가을에는 밤을 줍고 잠자리를 잡으러 다녔으며, 겨울에는 함박눈이 내리는 날이면 눈송이를 뭉쳐서 뛰놀았다. 이런 아름다운 경험들이 훗날 어떤 고통이나 시련이 닥쳐도 나를 버티게 해주는 큰 자양분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만약 자녀가 생긴다면 시골에서 키우고 싶다.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자연론자가 되어 찬양하고 싶다.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아무리 걱정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남모를 아픔과 고민은 있기 마련이다. 그건 교사로 일하는 선생님도,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도,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님들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기대한 만큼 실망하기도 쉽다.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오늘 모임을 통해서 어쩌면, 내가 실망했던 선생님들도 나름대로 우리에게 최선을 다했고 고군분투가 있었겠구나 싶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실 어린 시절 받은 상처가 쉽게 치유될 것 같지는 않다. 한 번은 중학교 졸업식 때 담임 선생님께서 분명 내가 대표로 상을 받는다고 하셨는데 당일 날 결국 내 자리에 계속 앉아있어만 있었고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하지만 선생님은 어떤 해명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아직도 그 일이 마음에 상처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노력하는 과정이, 이해하는 과정이 나라는 사람을 더 크게 만들고, 더 좋은 교육을 해나가는 데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를 통해 우리 반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치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연약하며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선생님들에게 실망한 적도 있지만 반대로 내가 선생님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자양분을 얻기도 했다.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처럼 가르쳐보라고 학습 부장을 시켜주신 4학년 때 선생님, 학업과 친구 문제로 스트레스받던 6학년 때 활력소가 되었던 풍물반을 지도해 주신 선생님,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벌써 이런 책도 읽냐며 칭찬하고 격려해 주신 선생님, 여고 시절, 반 친구들에게 선생님으로서의 보람과 자긍심에 관해서 이야기해 주었던 여자 선생님들. 그 선생님들이 알게 모르게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다. 교육학 공부할 때 정말 인상적이었던 개념이 ‘잠재적 교육과정’이었다. 잠재적 교육과정은 학교에서 의도하고 계획한 바는 없으나 학생들에게 은연중에 끼치게 되는 경험을 말한다. 앞서 열거한 선생님들은 내가 교사로서 꿈을 키우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셨다. 잠재적 교육과정은 부정적인 영향력도 조심해야 한다. 내가 혹시 학생들에게 나쁜 습관을 배우게 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늘 점검하면서 나의 지난 선생님들처럼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조심해야겠다. 학교에서 학생이란 많은 경험과 지식, 사랑 등 다양한 자양분을 먹고 자란다. 내가 자라온 날들을 되돌아보며 나의 학생들에게 좋은 것, 기쁜 것, 유익한 것을 나눠주는 선생님이 되어야겠다. 때로는 상처와 좌절과 실패도 성숙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서...


나는 어린 시절, 공부는 잘했지만 몸으로 움직이는 건 다 재능이 없어서 특히 체육을 두려워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회 때 달리기에서 꼴찌가 하기 싫어서 넘어지고 넘어지고 또 넘어져도 계속해서 연습을 했던 아이다. 그래서 내 무릎에는 그때의 상처가 훈장처럼 남아있다. 나한테는 그게 너무나 당연한 삶의 한 과정이었는데 분과 소모임 진행 선생님께서 “정말 성실하셨네요.”라고 말씀해 주셔서 깜짝 놀랐다. 그게 나의 ‘성실’을 나타낸 지표였나 하고 말이다. 비록 계속되는 체육 과목의 낮은 성적으로 체육을 많이 싫어하고 멀리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요가나 수영이나 산책 같은 활동은 좋아한다. 그리고 꼭 성적에 구애받지 않고 계속해서 생활스포츠를 즐기고 싶다. 내가 만난 아이들도 비록 숱한 세간의 평가와 좌절로 공부나 특정 과목이 설사 싫어진다고 해도, 앎에 대한 호기심과 즐거움, 과제집착력이나 끈기 같은 것은 버리지 말았으면 좋겠다. 중요한 건 결과보다 과정이고 그걸 해나가는 과정에서 얻는 기쁨과 행복이 더 크니깐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꼭 나에게 딱 맞는 옷처럼 즐길 수 있는 공부를 찾을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그리고 결국엔 세상을 놀라게 할지도 모르겠다. 이게 바로 교육에 대한 나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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