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여기 마흔일곱의 한 남자가 있다. 과학적으로 설명되지는 않지만 새들이 와서 죽는 모래사장이 있다. 그 옆 모래사장 한가운데에 그가 운영하는 카페가 있다.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안 나이, 고독과 친한 나이, 누구도 찾지 않는 나이의 그. 바닷새들, 바다표범의 울음소리가 적막한 그곳에 서서히 퍼진다.
그런 그가 한 여자를 발견한다. 에메랄드빛 원피스에 초록색 스카프를 손에 든, 이제 막 암초를 향해 물속에 잠긴 채 걷고 있는 그녀. 지체할 시간 없이 그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모래사장 위 죽어 있는 새들을 지나 파도와 싸워 그녀를 구해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목걸이, 귀고리, 반지, 팔찌를 찬 그녀는 왜 바닷물에 뛰어들었을까? 실연의 아픔일까라고 그는 생각한다. “날 내버려 뒀어야 했어요.”라고 말하는 그녀. 그리고 이내 “이곳에 머물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그녀. 그는 세상의 끝, 종착점에서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갖는다. 세 명의 남자로부터 겁탈을 당한 듯한 암시를 주는 그녀. 그런 그녀를 파닥거리는 여린 새로 느낀 그, 자크 레니에는 그녀에게 키스한다.
그 순간 나타나는 그녀의 남편, 영국인. 그리고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 그녀는 불감증이었다. 사실은 겁탈이 아니라 그녀가 원해서 취한 행동이었고 그녀와 남편은 치유를 위한 여행 중이었다. 새들은 여기서 죽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영국인. 그 뒷모습이 쓸쓸해 보인다. 그리고 떠나버린 작중 주인공, 자크 레니에.
세상에서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평범함에서 조금 벗어난 이들이 생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릿하게 느껴진다. 바닷가 해변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이야기에 생생함을 부여하고 쓸쓸한 장면을 포착해 준다. 로맹 가리는 왜 하필 이런 이야기를 썼을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표제작을 통해서 인간 존재 본연의 고독과 그럼에도 쓸쓸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죽기 위해 바다로 뛰어들었지만, 고독한 남자에 의해 살아난 그녀. 젊음을 취하고 싶었던 고독한 그. 그리고 그녀를 찾아온 남자, 영국인. 이들을 통해 삶에 대한 의지를 다시금 부여잡게 해 준다. 현실이 마냥 아름다울 수만은 없지만, 헛헛한 세상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잔잔한 울림을 준다.
새들이 죽어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나도 세상의 번잡한 모든 것을 벗어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귀머거리 사람들에게 지쳤다. 남 탓이라고? 난 언제까지 내 탓만 해야 되지? 소통불능,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은 영원히 내 시선에서 아웃시키고 싶다.
난, 그 여자처럼 남편도 없고 날 사랑해 주는 사람도 없지만 마음만은 홀가분하다. 나는 그 누구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는 거추장스러운 건 모두 벗어던질 거다. 나는 온전히 나로 살 것이다. 자유로워질 것이고 아무에게도 예속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만의 삶을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