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 <사랑에 대하여>
작별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린 그만 자제력을 잃고 말았어요. 나는 그녀를 가슴에 껴안았고, 그녀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어요. 눈물에 젖은 그녀의 얼굴에, 어깨에, 손에 입 맞추며 사랑한다고 고백했어요. 아, 우린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이었을까요!
그제야 우리의 사랑을 방해했던 모든 것들이 얼마나 불필요하고, 얼마나 하찮고, 얼마나 의미 없는 것들이었는지 비통하게 깨달았어요. 사랑은 그 자체로 가장 고귀한 것이고, 행복이나 불행보다 더 중요한 것이며, 흔히 말하는 선과 악의 잣대나 그 어떤 이성적 잣대로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제야 이해한 거예요.
마지막 키스를 하고 손을 꼭 붙잡은 뒤에 우린 영원히 헤어졌어요.
/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대하여> 중
‘아, 우린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이었을까요!’ 이 말이 너무 가슴 저리게 아파져 온다. 그리고 생각해 봤다. 사랑을 한 번도 안 해본 것과 사랑을 해보았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불행하게 끝난다면, 뭐가 더 좋을까 하는. 이왕 제일 좋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어져서 결혼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 아닐까? 동화 속 왕자님, 공주님 이야기처럼. 그런데 안톤 체호프의 단편 소설 <사랑에 대하여>의 파벨 콘스탄티니치와 알렉세예브나는 사랑을 확인하지만, 현실의 장벽에 걸려 결국 헤어지고 만다. 사랑이 가장 고귀한 것, 행복이나 불행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문득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가 생각났다. 타이타닉 주연 배우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다시 만나 부부로 열연하여 화제가 되었는데 둘은 극 중에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잠시 남편 역의 디카프리오가 파리로 떠날 것을 제안하자 우울증이 차도가 보이고 희망에 부풀었던 아내역의 케이트 윈슬렛은 디카프리오가 승진 때문에 파리행을 포기하자 다시 절망하고 만다. 이 영화를 보면서 사랑과 꿈 VS 지독한 현실, 안정적인 생활의 선택지에 심한 고민을 하기도 했었는데 안톤 체호프의 소설도 비슷한 맥락이란 생각이 든다.
두 작품 모두 결국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고 말았다. 내가 이런 상황에 부닥치면 어떡해야 할까? 콘스탄티니치가 ‘재미없고, 착하기만 하고 고지식한 남자, 지겹도록 합리적인 사람, 무도회나 저녁 파티에서 높은 사람들 옆에서 시장에 팔려 나온 소처럼 나른하고 불필요하고 순종적이고 무관심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 남자는 어떻게 자기가 그렇게 행복할 권리가 있으며, 그녀에게 아이를 낳게 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걸까? 그녀가 왜 하필 내가 아닌 그 남자를 먼저 만났는지, 우리 삶에서 왜 그런 끔찍한 실수가 일어나는지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말하며 우울한 가정과 한탄만 반복해 보아도 지금 닥친 현실은 다른 평범한 사람들처럼 행복한 사랑이 불가능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사랑을 위해 현실을 포기해야 할지, 아니면 현실의 안정을 위해 사랑을 포기해야 할지...
나 같은 경우엔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사랑이 아니었다고 망각과 기억 조작으로 영원히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 같긴 하지만…. 가슴 떨리는 두근거림은 경험해 보았어도 연애로는 이어지지 않았기에 확실히 잘은 모르겠다. 그런데 나라면 아마 두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사랑과 꿈보다 현실의 안정을 택했을 것 같다. 영화 <라라랜드>에서도 재즈피아니스트와 배우를 꿈꾸는 연인이 각자 꿈을 이루지만 결국 사랑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에서 낭만이 가미된 지독한 현실주의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사랑도 이루고 꿈도 이룬다면 그것만큼 완벽하고 행복한 삶이 어딨을까? 그러나 대부분 사람은 사랑을 이루지만 꿈은 포기하거나 꿈은 이루었지만, 사랑을 포기하거나 이도 저도 아닌 지루하고 반복되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나날을 살아간다.
아무리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고 해서 두근거림과 설렘이 없다면 그러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행복할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내가 내린 선택은 나이에 연연하지 않겠다였다. 나이에 조급함을 느끼면, 사회가 선고한 결혼적령기에 끌려다니며 적당히 괜찮은 사람을 선택하며 이런 게 인생이라고 누군가가 읍소하는 것처럼 “인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지금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결혼하는 거야.”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라면 차라리 조금 늦은 결혼을 하더라도 현실적인 장애물에도 걸리지 않는 최고의 완벽한 사랑을 만나서 결혼하고 싶다.
나는 고 김대중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 여사가 마흔 살에 결혼했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결혼적령기가 어린 나이였을 텐데 두 살 연하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애가 둘 있는 상처喪妻한 남자와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그리고 두 분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평화를 위해 살다 이 세상을 떠났다. 너무 멋진 부부가 아닐 수 없다. 시들어버리는 젊음이나 매력에 기대어 한순간에 인생의 모든 걸 걸기보다 오래 지속하는 힘이 무엇인가,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고민해 본다면, 어느 순간, 지금 내 옆에 배우자는 아닌 것 같다며 불륜에 빠지거나 헛된 사랑에 빠져 인생을 후회하거나 한탄하는 일이 줄어들지는 않을까. 임경선 작가님은 한 칼럼에서 결혼은 200% 사랑하는 남자와 해야 한다고 했다. 남녀 모두 200%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사랑과 결혼에 실패하는 일은 줄어들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 늘 생각하고 고민하고 경험하고 나를 계속해서 성장시키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