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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Jan 11. 2024

단 하루, 여행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속초 당일치기 겨울 여행

저라면,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바다냄새 물씬 나는,


속초





를 다녀오겠어요!




과자의성(좌), 오징어순대와 꼬막비빔밥(중), 속초해수욕장(우)


새벽 5시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씻고, 동생을 깨우고, 아침을 먹고, 강남고속터미널로 갈 채비를 하였다. 집 앞 도서관에서 1006번을 타고, 강변 동서울터미널에서 내렸다. 사실, 동서울터미널에서도 속초 가는 버스가 있는데, 처음에 모 지도 앱의 대중교통 경로만 보고 동서울터미널에서는 버스가 출발하지 않는 줄로 착각하고, 강남고속터미널로 예약한 것이었다. 그래서 돌아올 때는, 우리 집으로 돌아오기 편리한 동서울터미널행으로 예약했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탈 때, 거의 동서울터미널만 이용해 보아서 강남고속터미널은 처음 가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리모델링을 한 건지, 아주 깨끗하고 모던한 외관에 감탄하면서 우리가 승차할 버스가 있는 19번 홈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막 우리가 탈 버스 바로 이전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이내 출발하였다. 우리는 통유리 앞 소파에서 10분 정도 더 기다린 후, 8시 40분 차 버스를 승차했다. 동생과 나는 각자 맨 앞 1인석에 나란히 앞뒤로 앉았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한 동생은 꾸벅꾸벅 졸고, 나는 이때다 싶어 팟빵으로 정희진 작가님의 팟캐스트를 들었다. 이 날은 1월 호의 나혜석 작가와 염상섭 작가의 일화를 들었다. 미소지니, 여성혐오... 행려병자로 삶을 마감한 나혜석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사회가 여성에게 가하는 압력과 공포에 가끔 나조차도 어쩔 수 없이 굴하고 있는 건 아닌가 자문하게 되곤 한다. 세상은 알면 알수록 모순 투성이기에 더 알아갈 것도 배워야 할 것도 많은 게 아닌가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팟캐스트를 듣고 있으니깐, 어느새 휴게소, 그리고 다시 차에 올라 어느새 속초 고속터미널에 도착했다. 조금만 걸으면 속초해수욕장이지만, 어느새 11시를 넘기고 있어 점심을 먹기 위해 블로그에서 알아둔 곳으로 향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사람들이 많이 서 있었고, 택시를 탈까 고민하는 사이 버스가 도착해 후다닥 줄을 서서 버스에 올랐다. 15분여를 움직여 목적지에 도착했다. 원래는 대게 정식을 먹으려고 했으나, 블로그 포스팅만 보고 왜 이렇게 저렴하지 하고 횡재구나 하고 찾아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낚인 것이었다. 그래서 이내 포기하고 새로운 식당을 찾아간 곳에서 우리는 '꼬막 비빔밥'과, '오징어순대'를 시켰다. 대게 정식에 비하면 거의 1/4 하는 가격으로 푸짐하게 먹고 왔다. 오징어순대를 먹으면서 강릉 중앙시장에서 먹었던 오징어순대와 비교하며 어디가 원조인가 궁금해졌지만, 속으로만 생각했다. 


점심을 다 먹고, 동명항으로 향했다. 멀리 항구에 정박해 있는 커다란 페리가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코앞에 있는 영금정 정자로 올라섰다. 정자에 올라서니 문득 포항에서 걸었던 영일대 해수욕장 정자가 생각났다. 그에 비하면 아담한 크기에 정감이 물씬 느껴지는 정자였다. 이곳에서 바다 영상도 찍고, 셀피도 여러 컷 찍었다.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있자니 역시 바다는 겨울바다란 생각이 들었다. 재작년 2월 20일 생일에 강릉 안목해변에 다녀왔는데 그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다시 우리는 큰 길가로 나와 다음 목적지를 갈 방법을 검색했다. 버스로는 40분 가까이 걸리지만, 자가용으로는 15분이면 갈 수 있다기에 택시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마침, 우리가 걸어가는 길목 앞에서 한 아주머니가 택시에서 하차하였다. 우리는 얼른 달려가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과자의 성! 수많은 과자와 빵, 음료가 있고, 예쁜 동화 속 의상도 입어볼 수 있고, 휴식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성(castle)이라는 이름답게 건물 모양도 아름답고 커다란 위용을 자랑했다. 놓칠 수 없어 건물 앞에서 독사진을 찍었다. 옆에서 모녀지간으로 보이는 엄마와 어린아이도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나도 언젠가 결혼해서 아이와 같이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카페에서 딸기 뿜뿜 세트와 속초바다라테를 시켰다. 속초바다라테는 청자색의 바닷물과 하얀 거품이 오묘하게 조화된 멋스러운 칵테일 같은 커피였으며, 딸기 뿜뿜세트는 이름처럼 귀엽고 아기자기한 얼음 과일 주스에 과자 데코가 가능한 기프트 박스가 함께 딸린 제품이었다. 동생과 나는 함께 준비된 초콜릿 펜으로 열심히 쿠키 위에 '성공', '천재, '행복'같은 글자를 새겨 넣었다. 학교에서 제자들이 만드는 모습만 지켜보다가 직접 만드니 이 또한 색달랐다.



다음으로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가서 여러 동화 속 의상 중에 하나를 골라 입고 셀피를 찍었다. 처음에는 오프숄더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고 싶었지만, 속옷이 마땅치 않아 어깨를 가려주는 초록색의 퍼프소매 드레스를 골랐다. 동생은 나보고 겨울왕국의 '안나'같다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창피하다고 했다. 나는 이십 대 초반 시절, 드레스카페에 놀러 갔던 추억을 떠올리며, 어느새 이렇게 세월이 많이 흘렀나 절감했지만,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를 떠올리며, 남들이 뭐라 해도 내 마음이 젊으면 좋지 아니한가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난 엄청난 동안이다!


잠시잠깐, 동화 속 여행도 마치고, 다시 아까 전의 택시 기사님이 가르쳐준 콜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택시를 부르고 속초해수욕장으로 향했다. 가는 택시 안에서 동서울터미널로 가는 버스도 미리 예매해 두었다. 택시는 그랜저 신형이었다. 속초 해수욕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속초여행 이라고 쓰인 하얀 글자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사진을 찍어보았지만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음으로는 뒤로 보이는 관람차를 배경으로 사진 찍었는데 이번에는 마음에 들었다. 관람차를 보니 런던에서 봤던 런던아이가 떠올랐다. 여행에는 역시 무언가 랜드마크가 있으면 더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계속해서 해변 근처 모래사장에 가서 손가락으로 2024.1.11. S.C.라는 글자도 새겼다. 파도가 자꾸 밀려와 재빠르게 쓴다고 영어 이니셜로 썼는데 아무래도 한글로 '속초'라고 쓰는 게 더 나을 뻔했다. 마치 연인의 이니셜을 새긴 느낌이 드는, 이상한 모양이 되어버렸다. 결국 내가 쓴 글자는 거센 파도가 밀려와 빠르게 씻어 내려가버렸다. 그리고 다시 푹푹 빠지는 모래 속 발을 들어 올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조금 걸으니 갈매기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 보였다. 아마도 새우깡을 주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갈매기는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나오는 백사장이 바로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소설 속 배경처럼 쓸쓸한 느낌은 아니고, 경쾌하고 산뜻한, 행복한 느낌이 더 강했다. 그렇게 속초해변을 걷는 것은 즐거웠다. 


계속해서 속초(Sokcho)라는 글자가 새겨진 계단 위에서도 사진 찍고 '속'과 '초'라는 글자가 새겨진 커다란 흰색 조형물 사이에서도 두 팔 벌려 사진을 찍기도 했다. 수많은 연인들을 보며 문득 나에게도 남자친구가 생겨서 같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도 해보았지만,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나도 알지 못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주아주 잘해줄 텐데. 엘리자베스 베넷 리지와 다아시처럼 아주 근사한 사이가 되고 싶다. 그러려면 리지처럼 더욱 영민해져야겠다.


너무 늦지 않게 돌아가기 위해서 이날의 일정은 이걸로 마무리하고 고속터미널로 돌아갔다. 아직 버스시간까지 1시간 여유가 남아서 엔제리너스 카페에서 이날 찍은 사진을 정리했다. 여행은 사진을 다시 되돌아볼 때도 꽤 큰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아주아주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마, 첫 식당에서 오징어순대를 먹지 않았다면 중앙시장도 들렀겠지만, 이미 오징어순대를 먹고 와서 굳이 시장에 찾아가진 않았다. 가을여행 촬영지도 가볼까 했지만, 무리하게 동선을 짜는 것보다 꼭 중요한 데만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내 동생이 언제 적 가을동화냐고 면박을 줬다)


여행은 정말 스트레스 해소에 최적이다. 한 때 여행작가를 꿈꾸며 여행작가 수업도 들어보았던지라, 오늘의 여행기를 글로 길게 남겨보았다. 그런데 막상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진짜 여행작가가 되었다면, 금세 지쳐 나가떨어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끔 이벤트로 다녀오는 여행은 즐겁지만, 여행으로 밥 먹고 살기에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오늘처럼 간간히 다니는 여행은 너무 즐거울 것 같다. 오징어순대와 꼬막비빔밥을 먹으면서 했던 생각, '다 행복하려고 사는 거지!,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 위한 당일치기 여행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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