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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Jan 19. 2024

방정환의 동시 세 편과 우리 사회의 모습

전자책 《어린이의 노래 우리 집- 방정환 동시집 》을 읽고.


 

동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5절에도 등장하는 소파 방정환. 아동문학가 방정환은 어린이날을 제창하였고 많은 동화와 동시를 남겼다. 누구보다 어린이를 사랑하였으며 어린이 인권 신장을 위해 애쓴 방정환의 선구적인 노력이 있어 어린이들의 행복 증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럼에도 시간의 흐름에는 이런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대척점의 문제들 – 빈부격차, 입시경쟁, 학교폭력, 아동학대 등- 이 있어서 사회 문제로 불거지곤 한다. 이런 어지러운 세상에서 누군가 방정환 같은 위인이 나타나 다시 세상을 정화하고 또 다른 역사를 써 내려가는 것이 인간사의 한 모습인 것 같다. 동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의 후렴구, ‘역사는 흐른다’가 더욱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밤이다.     


오늘은 방정환의 동시 중 인상적인 세 편을 뽑아보았다. <어린이의 노래>, <우리 집>, <형제별>이다.     

먼저 <어린이의 노래>를 살펴보자.          




어린이의 노래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 먹고 대문 닫힐 때가 되며는,

사다리 짊어지고 성냥을 들고

집집의 장명등에 불을 켜 놓고

달음질하여 가는 사람이 있소.     


은행가로 이름난 우리 아버진

재주껏 마음대로 돈을 모으겠지.

언니는 바라는 문학가 되고

누나는 음악가로 성공하겠지.    

 

아- 나는 이담에 크게 자라서

내 일을 내 맘으로 정하게 되거든,

그-렇다. 이 몸은 저이와 같이

거리에서 거리로 돌아다니며

집집의 장명등에 불을 켜리라.    

 

그리고 아무리 구차한 집도

밝도록 환-하게 불 켜 주리라.

그리하면 거리가 더 밝아져서

모두가 다-같이 행복되리라.     


거리에서 거리로 끝을 이어서

점점점 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적막한 빈촌에도 불 켜 주리라.

그리하면 이 세상이 더욱 밝겠지.   


여보시오, 거기 가는 불 켜는 이여!

고달픈 그 길을 설워 마시오.

외로이 가시는 불 켜는 이여!

이 몸은 당신의 동무입니다.        




 

1연에서 보면 집집마다 장명등에 불을 켜는 사람이 있다고 하며, 3연에서 자신도 내 일을 내 맘대로 정하게 되거든 집집의 장명에 불을 켜는 사람이 되겠다고 한다. 장명등은 분묘 앞에 불을 밝히도록 장치한 등인데 여기는 꼭 분묘뿐만 아니라 집 앞에 있는 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4연에서 아무리 구차한 집도 밝도록 환-하게 불 켜 주리라, 더 밝아져서 모두가 다-같이 행복되리라라고 한 부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불을 켠다는 의미는 어둡고 음습한 것, 구차한 것 등을 쫓아내고 환한 빛으로 물들인다는 의미를 들 수 있다. 전자가 캄캄하고 막막한,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면, 후자는 좀 더 밝고 희망적인 미래지향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화자는 여기에서 머물지 않고, 5연에서는 거리에서 거리로, 적막한 빈촌까지도 불을 켜주겠다고 세상에 대한 애정을 맘껏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6연에서는 ‘이 몸은 당신의 동무입니다’라며 가난하고 서럽고 외로운 이들의 벗이 되어주겠다고까지 선언한다.      


내가 이 시를 고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시의 제목은 <어린이의 노래>이다. 어린 나이에 이런 따뜻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게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 지금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해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앞서 서두에 열거한 -빈부격차, 입시경쟁, 학교폭력, 아동학대-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사는 동네로, 아파트로, 부와 지위로 채로 썰 듯 촘촘히 위계화된 세상에서 너와 나의 편을 가르며 살고 있다. 이런 지옥 같은 세상에서 이런 따스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어린이가 있다면 참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런 아이는 이내 왕따가 돼버리겠지라는 쓸쓸한 마음이 든다. 방정환 선생님이 하늘에서 지켜보신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을 어떻게 바라보실까, 마음이 저며온다. 어떻게 하면 정다운 이웃의 정을 주고받던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서글프기만 하다.         

  

다음 시는 <우리 집>이다.     




우리 집     


우리 집은 가난뱅이

농사꾼의 집.

여름내에 땀 흘리며

김을 메고도,

겨울에는 쌀이 없어

굶주리는 집.     


우리 집은 찌그러진

오막살이집.

내가 내가 얼른 커서

어른이 되어,

커다랗게 훌륭하게

다시 지을 집.     


우리 집은 산골 동리

작은 초가집.

긴긴 낮엔 할머니가

혼자 지키고,

밤에는 다섯 식구

모여 자는 집.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풍족하지도 가난하지도 않던, 네 식구가 오순도순 모여 살았던 정다운 시골집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집은 난방비를 아끼고자 나무 땔감으로 난방하였는데 그렇게 아낀 돈으로 먹을 것도 사 먹고 읽을 책도 사고 학교 공부에 보탬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더 좋은 집으로 이사를 왔다. 그래서 이 시가 무척 와닿았다.


2연에서 보면 그리 좋은 집도 아니고 찌그러진 오막살이집에 살고 있다고 한다. 3연에서는 그 집이 초가집이란 것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집에 사는 아이는 커서 어른이 되면 아주 훌륭한 집으로 다시 짓고 싶다고 한다. 다섯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집에서 미래를 바라보며 소중하게 꿈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다. 작고 초라한 집이지만은 마음만은 우주처럼 크고 원대한 아이의 소망을 꼭 오래오래 지켜나갔으면 하고 응원하게 만드는 시이다.


요즘 어린이들은 사는 아파트 평수, 브랜드 네임 등으로 차별한다는 데 씁쓸한 기분이 든다. 젊은이들도 결혼할 때 집 장만으로 다툼이 많다고 하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과거와 달리 사회가 워낙 흉흉하다 보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다만, 이 시처럼 어떤 집에 살더라도 가족 간의 끈끈한 사랑과 함께 일구어갈 아름다운 추억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한 사랑과 추억 속에서 자신의 꿈도 소중하게 가꿔나갔으면 좋겠다.




마지막 시는 <형제별>이다.          




형제별     


날 저무는 하늘에

별이 삼형제

반짝반짝

정답게 지내더니,   

  

웬일인지 별 하나

보이지 않고,

남은 별이 둘이서

눈물 흘린다.          




한 명이 사라져 버려서 슬퍼하는 세 별의 우정이 애잔하지만 한 편 부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요즘에는,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는 셋이라는 숫자가 공포이기 때문이다. 셋이 있으면 누구 하나 소외될까 무서워서 가장 잔인한 여자아이가 먼저 가장 만만한 여자아이를 소외시켜 버리는 경우가 흔한데, 이 시에서는 셋이 누구 하나 차별하지 않고 고르고 평등하게 사이좋은 모습이 예뻐 보였다. 나의 학창 시절에는 항상 그랬다. 내가 짝을 만들지 않으면 내가 소외되니 내가 먼저 남을 소외시키겠다고 나서는 아이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소심한 아이가 언제나 타깃이 되곤 한다. 그런 아이가 사라져 버린다고 나머지 둘은 절대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됐네 하며 더 내쫓아버린다. 따뜻한 친구들 간의 우정이 그리울 때, 정면교사로 삼을 만한 시다.     




만화 <검정 고무신>처럼 옛 8,90년대 정겨운 추억이 묻어나는 시 세 편을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각박하고 삭막해지는 세상 속에서 옛 시나마 읽으면서 마음의 맑은 정신을 일깨운다면 비록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이 흉포해진다고 해도, 조금은 떳떳하고 순수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인다면 결국은 다시 아름다운 옛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역사에 잠식당하지 말고 역사를 새로 쓰는 사람이 되자!




https://youtu.be/fP7sVxEUJ7g?si=y5oEHH3Y_VeRDTI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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