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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Feb 10. 2024

프로의 세계를 배운 영화

영화《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고



<스포일러 있습니다-!>




스무 살 밖에 안 되던 대학교 2학년 생 시절 봤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딱 두 가지가 기억에 남았었다. 화려한 패션계, 그리고 깐깐한 편집장, 미란다(메릴 스트립). 직장인 13년 차인 오늘 다시 보니 편집장인 미란다도 미란다지만 고군분투하는 앤드리아(앤 해서웨이)가 더 눈에 들어온다. 촌스러운 패션으로 무시당하기 일쑤였던 앤드리아가 화려한 명품으로 휘감고 미란다에게 인정을 받기까지의 험난한 과정, 그리고 고지를 눈앞에 두고 과감히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온 앤드리아의 직업윤리와 가치관을 존중하게 된다.

   

악천후에 비행기표를 구해오라고 하질 않나, 해리포터 미출간본을 구해오라고 하질 않나 불가능한 미션을 던지는 미란다와 비행기표 구하기는 실패했지만 결국 해리포터 미출간을 얻는 데 성공한 앤드리아는 점점 묘하게 닮아가고 있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 미란다를 보며 실망하지만 미란다는 그런 앤드리아에게 너도 이미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앤드리아는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지만 결국 그토록 파리행을 원했던 에밀리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앤드리아는 그것을 깨닫는 순간, 자신은 더 이상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며 어떻게든 버티고 싶었던 미란다의 비서직을 과감히 버리고 나온다. 그리고 옛 남자친구를 찾아가 사과하고 그토록 원하던 기자직에 지원한다.      


문득 내가 스물일곱 살에 만났던 직장 상사와 미란다가 겹쳐 보였다. 깐깐하고 피도 눈물도 없고 인정사정없는 점이 비슷했다. 과중한 업무로 힘듦을 토로하는 내게 초과근무도, 주말근무도 불사하라고 지시했다. 게다가 한 발 더 나아가 직장 괴롭힘 금지법이 생긴 지금에는 법에 저촉될 만한 부당한 성희롱, 괴롭힘도 있었다. 미란다는 영화 속에서 사디스트라고 조롱받을 정도로 부하들을 가학적으로 몰아가는 듯 보이지만, 한 편 꽤 프로다운 유능한 모습도 보인다. 일 중독자라고 느껴질 정도로 일에 몰두해 남편에게는 이혼 소송도 당할 정도이다. 어디까지가 정당한 업무지시고 어디까지가 직장 괴롭힘인지 저울질하기도 하는 세상에서 미란다는 그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나 든다는 생각이 든다.     


새해를 맞이함과 동시에 나이와 함께 경력도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점점 미래가 걱정될 때도 있다. 어린 나이라는 무기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시절을 지나 내가 40대를 지나 50대가 되어서도 학생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그래서 다들 승진을 고민한다지만 어떤 선생님이 쓰신 책에서처럼 학생들을 만나기 두려워 도피성 승진을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과연, 내가 앤드리아처럼 상사의 직업윤리에 실망했을 때 그것을 거부하고 과감히 직장을 박차고 나올 수 있을까? 앤드리아는 처음부터 패션계 취업이 목표가 아니었고 꿈인 기자를 가기 위한 과정쯤으로 생각했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오직 한 길만을 달려온 사람들이 과연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물음이 생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밥벌이를 위해 비윤리적인 일을 감행할 자신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내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다. 혹시라도 불운으로 인해 생길 부당한 일을 견디거나 또는 도망치거나 또는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나 또한 힘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소시민적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세상은 마냥 아름다운 꽃길만이 펼쳐진 곳이 아니기에 끊임없이 나를 계발시키고 가꾸고 정진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게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버티고 생존해 나가는 빠른 속도의 세상에서 무너지지 않는 유일한 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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