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에 쓴 글
또로록 또로록…….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왠지 감상에 젖어들게 하는 날이다. 평소 감수성이 풍부하단 말을 듣는 나는 더욱더 비 오는 날에 나도 모르게 센티해진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왠지 모를 그 추적추적함, 생생히 들려오는 빗소리, 바닥에 부딪히는 빗방울들이 좋다. 그 분위기를, 들려오는 바람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다. 구두는 또각 소리를 내며 바삐 걸음을 재촉하지만 내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 더디게 더디게 움직인다. 그렇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감정에 푹 빠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누군가를 생각하게 된다. 나를 매몰차게 버리고 떠난 사람, 언젠가 짝사랑했던 사람, 한때는 밤낮으로 붙어 다녔던 옛 친구 등등. 비 내리는 풍경이 내 마음의 배경이 되어서.
왜일까? 비 내리는 날이면 더욱 생각나는 이유는. 그것은 빗소리가 주는 특유의 리듬이 마음의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 어느 시인의 실로폰 소리 같다던 그 빗소리는 켜켜이 묵혀두었던 마음 한 구석을 헤집는 재주가 있나 보다. 숨겨두었던, 바닥 속 깊숙이 꾹꾹 눌러두었던 마음들, 생각들을 한바탕 휘젓고 가는 걸 보면.
그런데 한 번 뒤집어보고 싶다. 지나간 과거의 상념에서 빠져나와 현재의 나를 살펴보자. 나는 누군가에게 그리운 대상일까? 과거의 나, 지금의 나, 그리고 앞으로의 나.
언젠가 내 친구 다연이가 “비가 오니깐 네가 생각났어.”라며 내게 연락을 주었다. 반가움 반, 궁금증 반으로 이유를 물어보니 “네가 비 오는 날 좋아했잖아.”라고 말을 건네 온다. 그때 슬며시 내 입가에 스치는 미소. 기뻤다. 누군가에게 비와 함께 기억될 수 있었다는 게.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맑고 고운 빗소리처럼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을까? 아니면 차가운 감촉만큼이나 떨쳐버리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다신 만날 수 없을지라도, 기억 속 저편의 사람일 뿐일지라도 이왕이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결국은 미화되기 마련인 추억조차 때로는 잔인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런 아픔은 없기를 바란다. 비와 함께 내가 누군가에게 아련한 그리움이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현재를 재무장하고 나를 더욱 다듬어볼지어다.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비 오는 날이 좋아서 예전에 써둔 글과 그렸던 그림을 꺼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