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망상을 판타지화하는 스토리
<어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서>는 평소에는 평범한 시드 카게노로 살아가다가 불의한 악당이 나타나거나 특별한 일이 생기면 ‘섀도우’로 변신해 강력한 먼치킨의 힘을 발휘하는 전사이다. 이세계물을 많이 접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주인공이 교통사고로 죽은 후 환생해서 겪는 일들이 처음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섀도우 가든을 결성해서 여러 어둠의 세력과 싸워나가는 이야기는 꽤 흥미진진했다.
섀도우는 등장할 때 항상 ‘어둠에 숨어서 어둠을 사냥한다’, ‘섀도우 가든’이라고 말한다. 이건 마치 영화 ‘배트맨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한때 인기를 끌었던 ‘바람의 검심’ 시리즈의 켄신을 떠올리게도 한다. 중2병스러운 망상 스토리이긴 하지만, 현실의 복잡다단함과 고뇌를 잊고 주인공에 몰입하게 해주는 영웅물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고전으로 치면 임경업전이 떠오르기도 한다. 임경업전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로 실존인물인 임경업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단, 허구적인 내용이 가미되어 위인전이 아닌 소설로 불린다.
나도 판타지를 종종 즐긴다.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소설책이 <연금술사>로 역시 판타지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다. 판타지가 좋은 이유는 굳이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까지 소설마저도 힘들고 피곤하고 복잡한 내용을 즐겨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왕이면 희망을 주고, 스트레스를 날리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서 이 <어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서>는 평범하고 다소 허술해 보이기까지 한 시드 카게노가 어둠의 세계에서 최강 실력자가 되는 스토리가 특히 남자들에게 매우 큰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어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서>는 게임도 출시되었다고 한다. 출시 전일까지 진행한 사전 예약에만 100만 명이 몰릴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내가 한 때 이와 비슷한 <파랜드 택틱스>라는 게임을 즐겨했었는데 그때도 친구들하고 이야기하면 여학생들은 그리 게임을 즐기지 않았었다. 그러나 한편 이런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즐기면 여성 시청자로서는 남자들의 세계를 이해하는데도 조금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물론 굳이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시대에 남자, 여자 구별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 애니메이션에는 꽤 멋진 여성 히로인도 꽤 많이 등장한다. 한 번 꼭 봐보길 추천한다!
2) 최강에 대한 철학
그 정도로 최강이라 하지 마라 그건 최강에 대한 모독이야
핵으로 증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핵이 되면 된다
5화 <아이엠>에서 제논 그리피와 대결하며 이와 같이 말한다. 핵으로 증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핵이 되면 된다. 이 말이 문득 나의 과거를 떠오르게 했다. 임용경쟁시험을 치를 때, 티오가 박살 나면서 두려울 때가 있었다. 그때 내가 친구에게 한 말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1등을 하면 되잖아였다. 결국 650여 명 지원에 400여 명이 떨어지고 나는 백 등 초반대로 합격하긴 했다. 오직 교직만을 목적으로 달려온 특수목적대학생으로서는 참 피바람 부는 시절이었다.
나의 삶의 철학은 최고가 되기보다는 남다른 사람이 되자였다. 그런데 이 애니는 ‘최강’을 강조한다. 어떤 싸움에서도 이겨버리는 최강의 실력을 자랑하는 ‘섀도우’가 등장한다. 물론 남다른 사람을 추구하는 나도 최강을 꿈꿀 때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임용시험처럼 경쟁에 내몰릴 때나, 어떤 대회에 나갈 때나, 성과를 내야할 때,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을 때, 누구보다 최고가 되고 싶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애니메이션은 주인공에게 몰입함으로써 그런 판타지를 충족시켜 준다.
섀도우가 어째서 최강이 되었는지는 나와있지 않다. 그냥 섀도우만 나오면 무조건 이겨버린다. 섀도우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 원작 소설, 게임까지 그렇게 인기를 끄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시대와 초경쟁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최고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을 테니깐. 그것이 타인에게 무시받지 않고 핍박받지 않고, 더 나아가 누군가를 도울 힘마저 줄 테니깐...
그러나 나는 섀도우가 최강이 된 이유를 한 가지 알 것만 같았다. 애니메이션에서 그 이유가 전면으로 나오진 않지만 한 가지 힌트를 찾아냈다. 그건 섀도우가 평소에는 평범한 시드 카게노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자신이 모브가 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름 없는 조연으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즐긴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할 때가 많다. 돋보이고 싶고, 특별해 보이고 싶고, 화려함을 추구한다. 그런데 시드 카게노는 사실은 자신이 섀도우라는 사실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수군대고 무시하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시드 카게노로서의 모브라는 역할에 충실한다.
나는 최강도 좋지만 이런 사람들도 좋다. 길가에 핀 들꽃 같은 사람들, 굳이 욕심내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섀도우가 시드 카게노로서 최강이 될 수 있었던 건, 허황된 욕심을 내지 않고, 그저 소박하게 자신의 일상에 충실하면서도, 진짜 나서야 할 때를 구분하는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진짜 최강은 자신의 진짜 본모습을 굳이 자랑하지 않더라도 꼭 필요할 때에 나타나서 실력을 발휘하는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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