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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Mar 14. 2020

애벌레에서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사랑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일단 나비가 되면, 너는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어.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사랑을 말이다. 그런 사랑은, 서로 껴안는 게 고작인 애벌레들의 사랑보다 훨씬 좋은 것이란다.“  


 

 어릴 때 봤던 아름다운 이야기,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 나는 지금도 내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 마음이 아플 때면, 이 이야기를 떠올리곤 한다. 한 마리의 애벌레에서 고치가 되고, 다시 나비로 날아오르는 과정. 기어오르는 게 아니라 날아올라야 했다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메시지. 어쩌면, 내가 지난한 고통 속에 있는 과정은 아직 나비가 되기 전인 고치나 애벌레 단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렇게 조금씩 슬프고 막막하고 두려운 나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사랑이 필요했던, 사랑을 갈구했던 20대 시절, 내겐 어떤 사랑도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귀엽다며, 휴대폰이 꺼져있으면 기숙사로 전화를 하고, 방학이어서 못 보게 되면 동아리 수련회에 꼭 놀라오라던, 다짜고짜 내 손을 손깍지 끼었던 남자 선배는 영문을 모르는 나에게 무차별적인 폭언을 던지고 나와의 관계를 끊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싶어 미안하다고 장문의 편지를 써가며 화해를 요청했지만 그는 끝끝내 나를 차디차게 거부했다. 심한 폭언과 함께.    


 대학교 4학년 때 교생실습에서 만난 다른과 동기오빠는 쉬는 시간에 갑자기 나에게 단 둘이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동학년 모임 때는 이 오빠와 친한 동기 언니가 이 오빠가 나를 좋아한다며 넌지시 일러주었다. 그렇게 나에게 마음이 있는 줄 알았다. 노래방 회식 때는 갑자기 귀엽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기까지 했다. 나도 마음이 열리려던 찰나, 동기 여자애에게 전해들은 이야기. 이 오빠는 오래전부터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어서 다른 여자를 만날 마음이 없다고. 그리고 정확히 그 때즈음부터 그 오빠는 나만 보면 고개를 홱 돌리고 철저히 나를 모른체 했다. 나는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사랑이 꽃필 자리도, 상처가 남을 자리도 없었다. 그냥 모든 게 신기루 같기만 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 대학 3학년 때, 같은과 남자동기가 수차례 내게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1학년 때 잠깐 친해질 뻔 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멀어졌던 남자동기였다. 내가 피아노실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으면 들어와 웃으며 구경하고 내가 한참 코드 반주를 배울 때는 본인이 직접 가르쳐주겠다며 학원 레슨비를 아끼라 하였다. 내가 임용시험을 지방이 아닌 경기도로 치겠다고 했을 때, 차라리 자기랑 함께 서울로 치자고 한 아이였다. 그렇게 내게 마음을 표현하더니, 우리과 동기언니가 내 휴대폰으로 그 아이에게 문자를 보낸 다음날, 내가 다가가 말을 걸자 모든 동기들이 다 쳐다보는 데서 갑자기 “몰라!”라며 소리치며 역정을 내었다. 그렇게 졸업할 때까지 서로 아무 말도 안하며 관계를 끊었다.    

 나는 왜 나한테 갑자기 화를 내고 멀어졌는지, 다들 무슨 마음으로 나에게 접근했던 것인지 모른다.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왜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냐고 한다. 나는 여자 동기들 사이에서 심한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었다. 그런 때여서 더욱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기 힘들었나보다. 홀로 있는 내가 예뻐 보이지 않았나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 후에도 몇 번의 사랑의 낌새가 있었지만 모두 허무하게 지나가버렸다. 소개팅은 너무 인위적이어서 싫고 주변에는 대학생 때만큼의 설렘이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참 많이 아프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사랑에 애달파 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일상을 견딜 즐거울 거리가 가득하며, 꿈과 목표가 있으며, 또한 그보다 더 멋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정말로 나는 사람 보는 안목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유가 뭐가 됐든 지간에 상황 설명도 안하고 등을 보이는 사람은 전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노랑 애벌레를 짓밟고 올라갔던 호랑 애벌레같은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의 안위와 마음이 더 중요했던 사람들...    


호랑 애벌레는 노랑 애벌레를 피하려고 애를 썼지만, 어느 날 다시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노랑 애벌레는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그래, 네가 올라가느냐, 아니면 내가 올라가느냐, 둘 중 하나야."
호랑 애벌레는 이렇게 말하고는, 노랑 애벌레의 머리를 밟고 올라섰습니다. 노랑 애벌레가 슬프게 바라보는 눈빛에 호랑 애벌레는 그만 자신이 미워졌습니다.    


 그들에겐 무엇이 더 중요했던 걸까? 내겐 꼭대기에 오르려다 추락사한 애벌레들이 아른거린다.    


"저 꼭대기......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나비들만이......" 
애벌레는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사랑을, 행복을 추구하는 내 작은 소망은 비참하게 짓밟혔다. 수필가 피천득 선생의 <인연>이라는 수필에서처럼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가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의 앞길에 방해가 되는 존재니깐. 그래서 그 처음의 설렘, 떨림을 뒤로 하고 차디차게 나를 버리고 간 거겠지. 그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성공이란 게 뭘까? 호랑 애벌레가 마주쳐야 했던 수많은 기둥 중에 하나는 아니었을까?


그렇게 높은 곳에 있는데도, 이곳은 전혀 고귀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밑바닥에서 볼 때만 대단해보였던 것입니다. 또다시 위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기 좀 봐, 기둥이 또 있어. 그리고 저기도...... 사방이 온통 기둥이야!"    

<꽃들에게 희망을>에서 호랑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의 한 때의 사랑이 참 행복해 보인다.


"나는 너와 함께 기어 다니며 풀이나 뜯어먹는 생활을 하고 싶어."
호랑 애벌레는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모든 것이 달라보였습니다. 기둥은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호랑 애벌레가 속삭였습니다.
"나도 그래 그러고 싶어."
그것은 위로 올라가는 일을 포기한다는 의미였습니다. 매우 어려운 결단이었습니다.
..중략..
수많은 애벌레가 그들을 밟고 올라갔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숨이 막혀서 답답했지만, 그들은 함께 있어서 행복했고, 눈과 배가 밟히지 않도록 서로 끌어안고 커다란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호랑 애벌레는 다시금 꼭대기를 향해 길을 떠나고 노랑애벌레는 쓸쓸하게 혼자 남겨진다. 노랑애벌레처럼 가끔 너무 쓸쓸하고 외로운 날에는 이렇게 글을 쓴다.     


 노랑 애벌레는 이렇게 무작정 기다리느니, 무슨 일이든 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도대체 무엇일까?"
노랑애벌레는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건 금세 달라지는 것 같아. 틀림없이 그 이상의 것이 있을 거야."
 마침내 노랑 애벌레는 멍한 상태에 빠지더니, 그동안 정들었던 것들을 떠나, 정처없이 헤매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슬픔으로 차올랐던 내 마음이 조금씩 안정을 되찾는다.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도 나만의 고치를 만든다. 둥글게 말고 말아 나비로 날아오르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 생각한다. 단 한 명뿐인 나의 사랑을. 그렇게 나는 애벌레로서 꼭대기를 향해 기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나비로 날아오르기를 소망한다. 노랑 애벌레를 짓밟고 올라갔던 호랑 애벌레가 다시금 내려와 노랑 애벌레와 함께 날아올랐던 것처럼. 우리의 소망과 사랑을 가득 담아서, 아름답게!        


"나비는 미래의 네 모습일 수도 있단다. 나비는 아름다운 날개로 날아다니면서, 땅과 하늘을 연결시켜 주지. 나비는 꽃에서 꿀만 빨아 마시고,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날라다 준단다. 나비가 없으면, 꽃들도 이 세상에서 곧 사라지게 돼."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되죠?"
"날기를 간절히 원해야 돼.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
..중략..
"너는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어. 우리는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을거야."
..중략..
"내 속에 고치의 재료가 들어있다면, 나비의 재료도 틀림없이 들어 있을거야."
..중략..
'너는 뭔가 알고 있었지? 그렇지? 기다림이 <용기>라는 것을.'
..중략..
호랑 애벌레는 새삼 깨달았습니다. 높이 오르려는 본능을 그동안 얼마나 잘못 생각했는지. '꼭대기'에 오르려면 기어오르는 게 아니라 날아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눈부신 노랑 날개를 가진 생명체 하나가 자유롭게 움직이며 기둥 주위를 맴돌고 있었습니다. 정말 멋진 광경이었습니다. 힘들게 기어오르지 않고도 어떻게 이렇게 높이까지 올 수 있을까?    <꽃들에게 희망을> 본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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