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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비 May 02. 2020

실패를 극복하는 힘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를 보고

 

젊은 시절의 라흐마니노프(출처 네이버캐스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 1위로 종종 꼽히는 곡. 듣고 있으면 마음이 저절로 음악에 따라 동요된다. 조용히 울리는 화음에서 시작되어 격정적인 반주로 이루어지다 잔잔한 흐름 뒤 웅장하게 마무리되는 이 명곡을 작곡한 라흐마니노프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바로 첫 곡인 피아노 협주곡 1번의 반응이 싸늘했던 것. 라흐마니노프는 첫 공연의 대실패로 우울증에 걸리고 3년간 방안에서만 칩거한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는 바로 이 시기에 천재적인 피아니스트가 정신의학전문의 달 박사를 만나 극복하는 과정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에게도 힘든 시기가 있었다. 시골의 소인수학급으로 이루어진 작은 학교에서만 4년간 근무하다 도시의 30학급 이상의 학교로 가니 한 반에는 서른 여명 가까이 되는 학생들이 있었고 아이들은 저마다의 개성으로 똘똘 뭉쳤다. 여리고 작은 목소리를 지닌 내 섬세하고 부드러운 교육방식이 다인수학급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고 물고 늘어지는 아이들, 내 수업방식이나 학급경영에 반항하는 아이들, 다른 아이를 따돌리고 배척하는 아이들, 공부에는 관심 없고 딴 짓만 하는 아이들이 내 수업을 방해하고 권위에 도전하였다. 차라리 수업시간에 학원 숙제를 하거나 멍을 때리는 아이들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1학년을 맡을 때는 학부모까지 가세해 수시로 전화를 걸어오고 위협을 가해오기도 했다.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스트레스고 죽을 것만 같았고 다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었고 정말로 힘겨운 시간들을 보냈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에서는 달 박사가 라흐마니노프와 공감대를 형성하고 과거의 상처들을 끄집어내 타파하고 새 곡을 쓸 자신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차이코프스키를 만나 인정받지만 지도교수는 여전히 라흐마니노프를 꾸짖고 면박주고……. 과거의 가족들에게 받았던 상처, 첫 곡의 실패에 대한 아픔들을 달 박사는 심리요법과 부드러운 말로써 어루만져 준다.


인정받고 싶나요?
왜 새 곡을 쓰려하지?
새 곡을 쓰면 사랑받게 될 거야


 처음에는 꺼지라며 적대적으로 대했던 라흐마니노프가 점차 달 박사를 받아들이고 함께하며 새 곡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사른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히 다 알고 있는 일화지만 뮤지컬 공연으로 보는 건 또 새롭다. 살면서 실패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좌절과 절망으로 하루하루 힘겨운 시간을 보내봤던 사람이라면, 라흐마니노프같은 천재적인 피아니스트도 한 때 이렇게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던 것에 위안을 얻고 극복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정신과치료를 받는다고 하면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몸에 병이 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듯 마음의 병이 나면 의사를 만나 치료를 받는 것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마음이 힘든 사람들, 상처에 매몰된 사람들이 혼자서 끙끙 앓지만 말고 정말 힘들 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가족이나 친구들, 지인을 붙잡고 신세한탄이나 늘어놓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공연 내내 피아노와 현악4중주의 명연주가 함께하여 뮤지컬 공연이 아닌 클래식 공연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뮤지컬 음반이 귀에 쏙쏙 감기지는 않았지만 멋진 피아노 공연과 두 주연배우의 탁월한 연기가 함께해서 창작뮤지컬의 미래가 밝아보였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만큼이나 충분히 감동적인 공연이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 시련을 극복하고 싶은 사람, 마음의 안정을 얻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음악은 그 어떤 것보다도 마음을 위로하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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