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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zzy Jul 13. 2020

승무원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세요?

최전방의 코로나 전사가 전하는 이야기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비행을 하기 시작하면서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에는 ‘마스크에 가려 승무원들의 미소를 볼 수 없다’는 승객들의 불만이 쇄도했다고 한다. 승무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다. 그렇다, 승무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늘 웃는 얼굴, 예쁜 유니폼, 곱게 말아 올린 쪽머리를 비롯한 단정하고 수려한 외모, 각선미, ‘치킨 오어 비프’로 상징화되는 기내의 식사 서비스 등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타격을 받은 이후로 승무원들 역시 의료진들처럼 방호복을 입고 비행에 나서게 되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온몸을 다 덮는 오버롤 방호복에 마스크, 장갑은 물론 고글까지 쓰고 비행에 나서는 우리의 모습을 나는 ‘코로나 전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밀폐된 공간인 비행기에 많게는 수백 명의 사람을 싣고 먼 길을 가야 하고, 그 손님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할 수는 없다. 코로나가 전 세계로 퍼진 후에도 여전히 비행은 계속되었다. 물론 국경이 많이 닫혀 비행의 수가 1/10 수준으로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본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특히나 대부분의 항공사가 비행을 중단하거나 마지막 순간에 취소하는 등의 사태가 빈번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경우도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본국이 아닌 나라에 갇혀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을 집으로 안전하게 보내는 데에 승무원의 역할은 필수적이었다. 특정 국적 사람들만 모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rescue flight(구조 비행)도 종종 있었다. 그 비행의 탑승을 기다리며 게이트 앞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우리 동료 승무원들이 지나가자 일제히 박수를 치는 영상을 보았다. 전 세계 대부분의 비행이 취소되어 갇힐 뻔했던 그들을 그 비행이, 그리고 그 비행을 맡아서 한 승무원들이 말 그대로 ‘구조’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구조 비행은 한 적이 없지만 일명 위험 국가라는, 코로나 확진자 수로 순위권에 들었던 나라들로의 비행은 꽤나 했었다. 부동의 확진자 수 1위를 지키고 있는 미국으로의 비행은 물론, 한창 이탈리아, 스페인, 이란 등이 3위권 안에 들 때 그 나라들로 비행을 갔었고, 확진자 수가 미미해 크게 걱정하지 않고 갔던 홍콩 비행에서 정작 확진자가 7명이나 나와, 나 역시 스왑 테스트를 받고 2주간 시설 격리를 당하기도 했다. 코로나라는 전쟁의 최전선에 서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승무원의 미소가 마스크에 가려 불만인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승무원 하면 많이들 떠올리는 대부분의 이미지를 당분간은 찾아보기가 어렵겠다. 곱게 빗어 올린 쪽머리는 방호복 후드로 뒤덮였고, 새빨간 립스틱과 매니큐어는 마스크와 장갑으로 의미가 없게 되어 심지어 바르고 나오지도 않게 되었다. 심지어 승무원 이미지의 상징과도 같은 유니폼도, 그리고 그 유니폼 치마 아래로 드러나는 각선미도 더는 보기가 어렵다. 이렇듯 방호복을 입고 고글 너머로 눈만 겨우 내놓은 우리의 현 모습을 어찌 이전에 우리가 논하던 승무원의 이미지와 연관시킬 수 있겠는가. 결국, 그 모든 것은 승무원의 일부이었을지언정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누가 누군지 얼굴도 잘 알아보기 힘들 만큼 온몸을, 심지어 얼굴까지 다 가리고 있는 현재,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순간 그 방호복을 통해 우리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다. 유니폼 치마를 입고, 빨간 립스틱을 꽉 차게 바른 이전의 모습은 미적으로는 지금보다 아름다웠을지 모르나, 그것이 승무원이 기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이유는 아니었다고 말이다. 승무원의 역할에 대한 인식이 서비스에만 치중되어 있었기에 승무원 하면 예쁜 미소를 지으며 기내에서 밥 주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승무원은 기본적으로 안전 요원이다. 만에 하나 큰 비상 상황이 생겨 비행기를 탈출해야 한다면 한 명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노력할 이들이다. 기내에서 불이 난다면 승무원은 소화기를 집어 들고 불을 끌 것이고, 생명이 위급한 순간에는 심폐소생술을, 새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에는 아기를 받아내고 탯줄을 자를 것이다. 그 순간을 위해, 절대 실제로는 일어날 것 같지도 않고 일어나지 않길 바라지만, 만에 하나 내 비행에서 위급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대비해 승무원들은 입사 직후 가장 먼저 안전 관련 트레이닝을 받는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생명’ 이 달린 일이기에, 입사 직후의 꽤나 혹독한 첫 트레이닝 이후에도 매년 리커런트 트레이닝을 통해 다시 안전과 응급처치 관련 시험을 본 후 자격 갱신을 해야지만 비행을 계속할 수 있다. 기내의 모든 산소마스크가 떨어지는 상황, 구명조끼를 입고 승객을 탈출시켜야 하는 상황 같은 카오스는 사실 4년을 꽉 채워 비행하면서도 한 번도 내 앞에서 일어난 적이 없다. 승무원인 나 역시 영화에서나 본 이야기이다. 하지만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거다. 내 비행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장담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으며, 안일한 마음가짐의 대가는 생명이다. 그것이 우리 승무원들이 매 비행 전 다시금 안전에 관련된 지식을 논하고 비행에 임하는 이유이다. 비행기에 탄 손님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멀미나 소화불량부터, 승무원이 되기 전에는 믿지 못했지만 실제로 종종 일어나는 출산이나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위급한 순간까지도 우리는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운 좋게 전문 의료인이 비행기에 타고 있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승무원 자체가 응급 처치 및 대처를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천식, 발작, 뇌졸중, 협심증, 골절 등 평소에 생각해본 적도, 다루어본 적도 없는 각종 응급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배우는 이유이다.


나 역시 유니폼을 입고 빨간 립스틱을 바른 입술로 환하게 웃으며 손님들을 맞이하던 때가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열심히 미소를 지어도 마스크에 가려 보이지 않기에, 고글 너머로나마 반달이 된 내 눈을 보고 내가 웃고 있음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승무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에 외적인 것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있지만, 단정한 외모, 환한 미소 등이 승무원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 결코 부정적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이는 승무원의 일부일뿐, 결코 전부, 아니 심지어 대부분도 될 수 없다. 승무원의 역할이나 존재 이유의 거진 전부나 다름없는 것은 바로, 손님들을 ‘안전’하게 모시기 위함이라는 것이, 미소조차 가려진 채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는 이 비극적인 상황을 딛고서라도 더 명확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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