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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니 Jun 02. 2023

삶 (여행)

여행은 깨달음이다

여행을 왜 할까? 여행의 본질은 무엇일까? 일상에서 우리가 카테고리 화한 수많은 것들, 고정관념을 가진 수많은 생각이 여행에도 적용되지 않았나 싶다 추억, 휴식, 자연의 경이로움, 낯선 도시의 아름다움, 색다른 경험들도 좋지만 너무 계획적이라는 것이 자유라는 여행의 특색을 희미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예상치 못하고 긴 시행착오 끝에 찾아오는 잠시의 안정이 여행의 묘미일수도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추억의 여행은 일상 속에서 가끔 사진첩처럼 꺼내서 볼 때 위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예상치 못한 사건이나 고생 끝에 뭔가를 깊이 깨달은 여행은 이후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행도 일상도 중요한 것은 경험이 아니라 상상력이고 깨달음인 것이다 여행은 배우기 위해 성장하기 위해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익숙한 생각에서 벗어나면 여행이 된다 마사이족의 여행목적지는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고 오히려 고향이 유동적이었다 여행이 길어지면 생활처럼 느껴진다 마찬가지로 충분한 안정이 보장되지 않으면 생활도 유랑처럼 느껴진다


작가가 정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신이 창조한 세계로 다녀오는 여행이다 생각과 경험의 관계는 산책을 하는 개와 주인의 관계와 비슷하다 생각을 따라 경험하기도 하고 경험이 생각을 끌어내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그냥 일어나는 사건이 거의 없다 나중에 일어날 일들과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다 현실에서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고 모든 것이 연결되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여행은 소설과 닮았다 낯선 세계로 들어가 체험 한 다음 다시 원래 지점으로 돌아오면 내면의 변화를 겪는다


여행은 인간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움직여야 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 깨달음을 얻어야 하며 안주하면 안 된다 과거는 훌훌 털어내고 미래에 대한 걱정을 놔야 한다


계획한 모든 것을 성취하는 여행은 재미가 없을 것이다 여행의 본질은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과 무역을 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지만 이 세계가 자신이 생각해 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인간과 짐승, 문화와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와 그것을 <동방견문록>으로 남겼다


여행은 통상 누구에게나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명확한 외면적인 목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강력한 바람이 있다 놀라운 깨달음, 뜻밖의 사실,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실패와 시련을 겪는다 해도 행복을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다


여행은 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에피쿠로스나 스토아학파에서는 말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알 수도 없다 그렇다면 그냥 현재를 즐기자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인류를 호모 바아토르 여행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기도 했다 인류는 유인원과 97% 이상 유전자를 공유하지만 활동량이 훨씬 많다 하지만 동물원의 침팬지조차도 고혈압이나 당뇨에 걸리지 않는다 하드자족은 하루에 평균 9~12KM를 이동한다


인류는 끝도 없이 걸었다 아프리카에서 출발해 그린란드나 북극권까지 갔고, 몽골에서 출발한 어떤 그룹은 얼어붙은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마야와 잉카, 아즈텍 문명을 일구었다


칸트가 단 한 번도 자신이 사는 쾨니히스베르크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지리학 강의를 열었다 필리어스 포그라는 사람은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선실에서만 머문다 어떤 장소에 접근할 때 중요한 것은 상상력과 성찰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타인을 통해 경험하는 것, 타인이 놓쳤을 어떤 것을 상상력을 동원해 복원하는 것, 이런 것들이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보았다 바야르 식으로 말하자면 누구보다 이 여행을 가장 총체적으로 체험하게 되는 이는 자기 집 거실 소파에 누워 있는 시청자들이다


여행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 해진다 내가 내 발로 한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 아닌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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