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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니 May 30. 2023

철학 (니체)

영생하는 초인

결핍이 고민을 부르고 고민은 사유를 낳는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간은 오늘과 같이 진화할 수 있었다 이는 인간이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고통받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니체는 건강을 미덕으로 찬양한 몇 안 되는 철학자 중 한 명이었지만 본인은 건강을 거의 누리지 못했다 편두통, 발작, 구토, 시력 등에 시달렸다 이런 이유로 니체는 손 대신 발로 글을 썼고 남이 한 권에 담을 내용을 한 구절로 표현해야만 했다 역설적으로 최악의 건강상태가 최고의 작품을 탄생하게끔 했다 니체는 고통을 예술적인 창조로 활용했다


매운 고추, 마라톤, 가학적 성애를 보면 인간은 적극적으로 고통을 추구할 때가 많은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릴 때 우리가 했던 눈싸움은 아프지만 쾌락도 느낀다 마약은 극한의 괘락 뒤에 고통이 따른다 고통과 쾌락은 서로 닮아 있고 한 끗 차이다


《인간은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사물들에게 가치를 부여했다 가치 평가란 곧 창조이다》


《인간이란 하나의 시도였다 아 수많은 무지와 오류가 우리의 육체가 되었구나 만물의 가치는 그대들에 의해 새로 정립되게 하라》


돈의 본질은 물물교환이다 즉 돈은 가장 편리하지만 물건을 교환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는 돈 이외에 다른 것으로 물건 또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교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돈을 좇아갈 것인가 아니면 따라오게끔 만들 것인가? 돈의 가치는 세상이 부여한 가치다 돈도 내가 기준이 되면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벌었다면 무엇을 할지 생각해야 한다 만약 내가 1 조재산이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1 조재산이 있어도 변하지 않고 지금과 매일같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돈은 재평가될 것이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해진다


사치하는 사람은 각성하지 못한 사람이란 증거다 각성한 자는 물욕이 적다 왜냐면 인간은 깨닫기 위한 존재이고 돈과 사치품은 깨닫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요란한 풀무보다 못한 일을 하는 위대한 사상들이 많다 그것들은 그저 부풀리기만 하면서 내부를 더욱 공허하게 만든다》 니체의 관점에 따르면 참지식이라면 기존의 모든 영역의 지식을 의심하고 이 공인된 지식이 도대체 어떤 기초 위에 세워졌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무엇을 확립했는지를 따져 물어야만 한다​ 세상에는 달과 태양처럼 동시에 볼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은 언제나 상호작용을 한다 보이는 게 과하면 과할수록 어두운 면도 따라서 커지는 법이다 오히려 평범한 것이 가장 어렵다 진짜, 진실, 진리가 늘 잘 안 보이는 이유다


《모든 것의 맛을 볼 줄 아는 완전한 만족감이 가장 훌륭한 취향이 아니다! 나와 그렇다 아니 다를 말할 줄 아는 아주 반항적이고 까다로운 혀와 위장을 존경한다 모든 것을 씹고 소화하는 것이 돼지의 특성이다》까다롭게 좋아면 취향이 되고 이런 취향이 수준을 만든다 우리가 까다롭게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취향이 곧 업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서구철학이라는 천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동양의 실이 엮여 있다 니체, 쇼펜하우어, 소로, 윌리엄 제임스도 인도와 중국의 지혜를 익히 잘 알고 그 지혜들은 본인들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철학에는 자신의 잠재공간을 깨닫는 내면세계와 만물의 조화로움을 깨닫는 외부세계가 있다 철학은 또 크게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과 손에 구체적으로 잡힌 현상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철학은 하나의 진리가 있다는 절대적인 관점과 하나의 진리는 있을 수 없다는 상대적인 관점을 가진다 니체의 철학은 회의주의지만 회의에서 끝나지 않는 철학이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철학의 구분을 니체의 철학에 적용하고 싶지 않다 니체가 망치를 든 철학자 라고 한 이유는 단순히 기존의 이념과 신을 부셨기 때문만은 아니다 니체는 망치로 새로운 철학을 조각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말한다 진리는 상관없다 신은 죽었다 인간은 노예가 될 수도 있지만 신을 뛰어넘는 초인도 될 수 있다고 말이다


니체는 신은 우리 자신, 스피노자는 신은 곧 자연, 장자의 도는 충만하게 가득 차 있는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다 신이든 그게 무엇이든 중요한 것은 우리 내면에 깃들어 있는 위대한 가능성이다 우리 내면에는 신이 살고 있다 신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소비와 향락을 얻는 대가로 흔쾌히 사회를 위한 소모품이 된다 니체는 노동에 대한 찬사를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들이 노동에 쓸 에너지를 정신의 성숙과 독립을 위해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복해지려면 아주 적은 것만으로도 족하다 가장 적은 것, 가장 조용한 것, 가장 가벼운 것, 도마뱀의 바스러짐, 한 번의 입김, 한 번의 스침, 순간의 시선, 이렇게 작은 것이 최고의 행복을 만든다》 작은 행복을 알아야 큰 행복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큰 행복을 작은 행복으로 착가 하면서 보다 더 큰 행복을 계속 좇게 된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다


《내 눈에 그대들은 아직 충분히 고통받고 있지 않다 그대들은 자신 때문에 고통받을 뿐이다 아직 인류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 않는다》 초인은 인류애에 의해 고통받는 존재다 초인은 집단이 아닌 세상에서 자기 역할을 찾는다 그래서 자신의 고통만 호소하는 사람은 작은 인간인 것이다


《나의 동정과 고통이 어쨌다는 것인가 내가 행복을 얻으려고 열망하는가? 나는 나의 과업에만 뜻을 두고 있다》행복은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대단한 것이 아니다 행복은 목표가 될 수 없고 도구로만 작용한다 초인에게 행복마저 사소하다 행복은 그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자라투스트라의 과업을 하나의 꿈으로 해석하고 싶다 꿈은 일종의 태도이다 꿈은 삶의 의미를 깨닫는 것이다 자신과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결정이다 꿈은 이룰 수 있지만 이룰 수 없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꿈이 우리의 성장을 이끌고 내면의 그릇을 키울 것이다


신학을 공부한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걸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보고 기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그는 유명 대학 교수의 안정적인 생활을 방랑하는 철학자의 삶과 맞바꾸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옷, 글을 쓸 종이와 커다란 가방이 전부였다 결과적으로 니체는 자신의 고유성과 천재성을 드러낼 수 용기 있는 결정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고유성을 버리고 세상의 보편성을 택했다 자신의 천재성을 덮어버리고 평범함만을 드러내고 있다 지나치게 눈치를 보는 사람은 사회에서는 예의라고 미덕이라고 칭찬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잃은 자에게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종교라는 카테고리 안에 갇힌 사람과 회사 혹은 사회의 룰에 갇힌 사람은 많이 다를까? 우리의 가치관은 희미해서 누구를 진심으로 존경할 수 조차 없다 꿈이 없어서 자주 불안해한다 좋은 습관이 없어서 부정적인 태도를 자꾸 키운다


니체가 좋아하는 쇼펜하우어는 "고독은 모든 뛰어난 인물의 운명이다"라고 했고 프랑스 사상가 보브나르그는 "고독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음식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과 같다"라고 했다 우리는 누구의 무언가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고독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니체의 철학은 쇼펜하우어의 회의주의 혹은 염세주의 철학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니체는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그의 초인사상과 영원회귀로 잘 표현했다 니체는 말한다 왜 사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고통도 이길 수 있다고 말이다 그는 극심한 고통과 심각한 건강문제에도 자신의 루틴과 좋은 습관을 유지하려 했다


그렇다면 니체한테서 얻을 수 있는 삶의 힌트는 뭘까? 우리는 자신의 꿈, 가치관, 좋은 습관을 만들어야만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고유성과 천재성을 드러낼 수 있다  인간은 깨닫기 위한 존재다 자신 내면에 있는 초인을 깨우려면 삶 전체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영원회귀의 법칙에서 우리는 정확히 똑같이 반복된 삶을 산다 우리에게는 선택권이란 없다 하지만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이다


니체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태도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는 모든 것은 재평가가 가능하다 니체의 의하면 사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해석만 있을 뿐이다


영원보다 무거운 것은 없다 만약 모든 것이 무한히 되풀이된다면 인생에 가벼운 순간이나 사소한 순간은 없다 모든 행동은 똑같이 크고 작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웃는 것 외에 또 뭐가 있을까?


니체의 영원회귀를 깨닫는 순간 허무를 딛고 일어나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변화시킨다 니체는 우리에게 제안한다 순종적인 노예의 도덕에서 벗어나 자기 삶을 스스로 창조하는 주인이 될 것을 말이다 생명은 유한하지만 우리는 영원한 순간을 만들 수 있다 인간이 불안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간접적으로 많은 적 든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기억되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나에 대한 기억이 누군가의 생명으로 이어져 살아 있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기억되기만 하면 어떤 의미로 영원히 죽지 않을 수 있다 죽지 않는 우리에게 두렵고 불안한 것이 또 뭐가 있을까? 소크라테스가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태연하게 죽음을 택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못한 채 죽는 것이다 이게 우리가 제대로 사는 방법에 대한 힌트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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