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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Nov 01. 2024

시집살이 노래의 형성 배경

어찌 노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집살이 노래는 시집살이라는 여성적 삶을 공감하는 여성들 사이에서 향유되고 전승된 노래입니다. 여성은 고려나 조선 전기에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규제를 받으며 살았지만 가족 내에서만큼은 실질적인 권한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18,19세기를 거치면서 종법제가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평민 여성들은 가족으로의 권리와 의무도 보장받지 못하는 환경에 처하게 됩니다. 특히 시집을 가게 된 어린 여성들은 가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이런 배경에서 자라난 것이 시집살이 노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선 후기 부계 중심의 결혼 및 가족제가 평민 여성의 삶에 정착하면서 생겨난 노래가 시집살이 노래라 수 있겠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여성, 특히 시집을 온 어린 여성에게는 발언권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혼자 혹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과 함께 부른 ‘노래’는 단순한 노래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억압된 욕구를 표현하고 내적 갈등을 해소하는 살기 위한 몸부림처럼도 보입니다.


조선이 세워지면서 왕가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집으로 장가를 가는 남가여귀혼을 종법제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이미 완고하게 자리한 혼인 풍습을 거스르기는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율곡 이이도 외가에서 성장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는데요, 남성이 여성의 집으로 장가를 가는 혼인 관습은 뿌리 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나라의 기강을 되살려야 한다는 복고적 움직임이 역설적으로 종법제를 위에서 아래로까지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종법제의 확산과 가족제의 변화, 재산상의 상속과 결혼제도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면서 18세기 이후의 여성은 전시대와는 다른 세상을 살았습니다.


17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들과 동등하게 딸은 윤회봉사가 가능했고, 출생 순으로 호적에 기재되었으며, 결혼한 후에도 자기 소유가 인정되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적장자의 봉제사, 아들 위주의 호적 기제가 보편화되면서 기혼한 딸에 대한 재산상의 권리가 사라지게 되면서 여성의 위상은 큰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에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것은 양반가의 여성들이었습니다. 조선후기 양반 여성에게 닥친 거센 변화의 바람은  규방가사나 장편소설을 통해 억압된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고자 하는 새로운 문화적 욕구를 만들어냈습니다. 물론 그 변화는 평민층에도 생겨났답니다.


평민 여성의 생활은 유가적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파생된 제도나 규범보다는 먹고살기 위해 매달렸던 현실 즉 노동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외법에 의해 출입이 통제되었던 양반 여성과 달리 평민 여성들은 논밭에서 남성들과 함께 일했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소개한 바가 있는 기록을 한 번 더 환기해 봅니다.    

 

   유수원의 <迂書> ‘論閑民’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농가의 부녀는 농사일하고 식사를 마련하느라 겨를이 없을 정도로 바쁜데,

    또 스스로 옷까지 짜서 입어야 하니 그 옷 짜는 것이 막히고 잘 나가지 못 한다”       


   <병자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돌샘골 올벼논을 매러 수야하고 용수 아내와 계집 안 종 넷이 갔다”

   “돌샘골 올벼논을 두 번째 매러 집의 종 아홉과 정수 부처까지 열하나가 갔다”

   “거리실 논을 수야가 마저 매러갔다”     


여성은 길쌈뿐 아니라 농업 노동의 중요한 노동 자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농번기에는 김매기 같은 농사일을 기본으로 하면서 매끼 방아를 찧어 식사를 준비하고 밤에는 길쌈과 바느질로 옷을 만들어 냈습니다.


여성이 담당한 노동 가운데 길쌈은 오랜 역사적 연원을 가지는 여성 전유의 노동이었습니다.  면직과 같은 것은 국가적 통제하에 수행되던 생산노동이기도 했니까요. 힘겨운 노동으로 만들어진 직물은 대부분 세금으로 충당되기 바빴습니다.


육체적으로 고단한 일상을 살아야 했던 여성에게 18세기 이후 강화된 가부장 중심의 가족제가 정착되면서 더욱 퍽퍽한 일상을 살게 되었습니다.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이중의 억압을 받게 된 평민 여성은 오직 일하기 위해서 생존한다고 할 만큼 고된 삶을 살았다고나 할까요. 이러한 모습은 조선 후기 창작된 민요계 한시라든가 사설시조, 고전 소설과 규방가사, 판소리 등을 비롯하여 시집살이 노래, 여성 생애담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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