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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틈과경계 Nov 07. 2024

큰아기 시절의 노래

시집살이 노래는 여성의 중요한 삶의 국면과 자기 정체성을 담은 노래입니다. 시집살이 노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 사회를 살았던 여성의 생활과 역할을 살펴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조선 후기 평민 여성의 생활을 기준으로 삼되 생존하고 계신 90대 이상의 여성 생애담을 통해 유추하는 방법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시집살이 노래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을 무렵의 자료를 소개하는 것이니까 이제는 생존하지 않으신 분들이기도 합니다.  


농촌에 거주한 전통적인 삶을 살았던 여성의 생애는  큰아기 시절, 며느리 시절, 시어머니 시절로 나누어서 말할 수 있습니다. 결혼을 중심으로 양분할 수도 있지만 서영숙 선생님이 제시한 여성 생애의 시기 구분을 따라가 봅니다.        

  

큰아기 시절의 여성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가사 노동의 중요한 자산으로 기대되면서 자랐습니다. 여덟 살 안팎의 나이부터 육아와 가사노동을 담당했던 상황을 김점호 님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십니다.


    그레 크는데, 우리 엄마가 천만이라고 옛날에 기침나고 또 가래도 딜이 올라오는 병이 있니더, 그병에 걸렸잖니껴. 요새는 천만이 없는동 몰따. 그 병을 내가 여덟살부텀 시작해 가주고 돌아가실 때까지. 그런데 우리 엄마가 기침이 막 나고, 가래도 글이나고 밤으로 그라마는 나는 마 밤새도록 일났다 누웠다.. 그래 살아나오는데 그때부터 빨래 씻는 게 고만에 내가 시집오도록. 요새는 물이 흔치마는 그때는 물이 쫄쫄 니러 가는데 물 가새 가가 씨마는 손이 마 얼어 빠질 것 겉애. 방망이고, 우에 손등어리고 땟물이 마 깽깽 얼었어...중략...나물밥을 할라꼬 산나물을 뜯어가 주고 삶아 가주고 삼동에 걸에 헹구러 가마는, 그 도랑 가새 울었는 것도 생각히니더, 지금.      


  천식에 걸린 어머니 때문에 여덟 살부터 빨래와 나물 뜯기를 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겨울이면 얼음을 깨 가면서 손이 꽁꽁 얼어붙을 것 같은 고통을 견디면서 빨래를 했던 기억, 산나물을 뜯어다가 삶고 헹구는 고된 과정을 거쳐 나물밥을 했던 시간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김유희 선생님은「여성 소리꾼의 생애사에 따른 민요의 자기화와 창조적 형상」라는 논문에서 김분진이라는 분의 생애를 다루면서 민며느리인 어머니와 노름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일곱 살부터 물을 긷고, 아홉 살에는 명 잣는 노동을 했던 일들을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딸들은 어린 시절부터 집안 내 가사 노동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밭에 일하러 나간 어머니, 삼 삼기 하느라 베 짜기 하느라 아이를 돌볼 틈 없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동생을 키우며 어머니가 하는 여러 가지 일들을 거들었습니다.  


 큰아기 시절 여성은 열세 살에서 열다섯 살 정도가 되면 ‘손 더듬’이란 입사의례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손 더듬’은 일이 서툰 처녀의 집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 그 처녀가 새참을 대접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이러한 새로운 노동의 조력자로 인정을 받게 되는 현장에서 여성들은 새로운 노래와 접할 수 있었습니다. 


큰아기 시절 여성들은 대체로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과 어울려 다니며 나물을 뜯거나 혹은 언니와 같은 연장자들과 일하면서, 집안일을 거들면서 할머니와 어머니, 이웃집 아주머니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다양한 노래를 듣고 익혀가면서 노래 자산을 축적해 나갔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다양한 노래를 듣고 익히는 과정을 통해 시집살이 노래를 접할 수 있었고 노래를 통해 시집살이가 어떤 것인지 사전 정보를 가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귀동냥으로 들어 배워서 부르게 된 노래를 통해 자신에게 닥쳐올 시집살이를 인식하였다고나 할까요. 그러나 이 시절 혹시라도 시집살이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는 여성은 노래의 사연보다는 리듬이나 곡조를 모방하는 데 그쳤을 수 있습니다. 아직은 실감할 수 없는 미래의 사건이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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