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전시 그리고 경찰차
어떤 시대에서든지 누군가는 차별받았다. 물리적인 힘으로 그랬고, 정교하게 시스템화된 구조에서도 그랬다. 여성이 자기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다. 아버지 이름으로 자기 작품을 발표하거나 몰래 그리고 싶은 것들을 남몰래 공유하던 시절이 있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그런 시대의 이야기다.
결혼을 통해 사회적 존재로서 생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서양이나 동양이나 마찬가지였다. 정혼자에게 보내야 할 초상화를 그려야만 하는 여성과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또 다른 여성이 등장한다. 거친 파도를 가르고 성을 향하는 그가 필사적으로 화구를 건져내는 첫 장면은 영화가 던지는 주제다.
거친 파도와 바람이 일상으로 펼쳐지는 섬에는 성이 존재한다. 화가가 찾아가는 거기에는 여성만이 등장한다. 어쩌다 물건을 나르는 남성이 드나들지만... 어둡고 침침한, 황폐하게 방치된 듯 보이는 성, 누군가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그곳에 찾아 들어간다. 아니 불려 들어간다. 철저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바닷가를 산책하고 뛰어다니고 가져온 책을 나누어보면서 화가는 몰래 초상화를 완성한다. 결국 그렸다는 사실을 본인에게 알린다. 초상화를 본 당사자는 그림 속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고 한다. 결국 다시 그리기 위해 며칠 간의 유예기간이 주어진다.
유예된 시간, 어머니가 없는 성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임신한 하녀가 아기를 지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건이다. 해가 진 어두운 밤의 시간에 그들이 찾아간 공간에는 비슷한 차람의 여성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소리를 모아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소통한다. 아이를 지우기 위한 사람을 만나고 그 자리를 따라간 화가와 초상화의 주인공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게 된다.
비밀리에 모인 여성들은 공동체를 이루면서 공식적으로 할 수 없었던 것들을 나눈다. 어두운 밤의 시공간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소통한다. 영화가 끝이 나는 순간에도 그 목소리들은 계속 울려 퍼진다.
밀라노로 떠난 그를 다시 만나게 된 것은 비발디 곡이 연주되는 장소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던 날 들려주고 싶었던 곡을 거기서 듣게 된다. 곡을 들으면서 흐느끼는 모습을 화가는 멀리서 바라본다. 영화는 두 여성의 사랑을 다루지만 그 사랑은 기존의 남성 중심의 세상에 대한 저항이자 반란이다. 절박하게 절실하게, 한정된 시공간에만 가능한 그런 사랑말이다.
운명을 피하지 않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에 용솟음치는 열망과 열정을 찾아낸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고 이름 지은 그림은 그렇게 탄생했다.
아시아 여성 화가들의 몸에 관한 전시를 보면서 유사한 감정을 느꼈다. 이성적이고 시각적이며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본연의 날 것, 훼손되지 않은 원초를 찾아가는 여성 미술가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몸이었다. 철저하게 유린되고 상품화된 몸들을 보여주는 그들은 아름답다고 여겨진 모든 통념을 부정한다. 흉측하고 불온하며 불안정하고 음습하다고 치부된 모든 것들을 쏟아낸다. 제도권에서 추하다고 규정된 모든 것들을 되살리려는 노력이다. 은폐된 진실을 직시할 때 진정한 아름다움은 살아난다.
국현 외부에는 계엄을 선포했다가 탄핵소추된 괴물이 이동한다고 수많은 경찰자와 경찰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같은 시간 나는 훼손되고 상품화되고 도구화되는 여성의 몸과 몸짓 그리고 그다음 세계를 향하는 몸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나는 남겨진 삶을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 그게 요즘 생각이다. 나를 변명하는 구질구질함에서 벗어나고 싶다. 더 이상 꾸밀 것도 더 이상 포장할 필요도 없는... 그냥 나는 나이고, 나는 나 이상도 나 이하도 아닌...
강박적 질문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제도화된 삶에서 해방되는 길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여전히 묻고 또 묻는다. 불온한 시스템에서 탄생하고 자라고 교육받고 일하며 살아온 내가 그것을 온전히 부정하며 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