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부메랑
며느리 시절은 고된 노동의 연속입니다. 눈코 뜰 새 없이 그렇게 아이를 낳고 기르고 일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냅니다. 손마디는 굵어지고 검은 머리가 윤기를 잃고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합니다. 집안 내 일원으로서 자리를 잡기 시작한 며느리는 며느리를 맞게 됩니다. 아들을 낳고 난 이후 며느리의 위상은 달라집니다. 집안의 대를 잇는 역할을 수행하고 어머니로 자리합니다. 그 사이 무섭고 두려웠던 시부모는 나이가 들어갑니다.
어느새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됩니다. 새로 시집온 어린 며느리를 맞게 됩니다. 16세 안팎의 여성은 모든 게 낯설고 어색하기 마련입니다. 밭을 매러 나가서도, 잔심부름을 하여도 요구에 부응하기엔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어머니는 자신이 겪었던 낯선 시집살이와 그 적응의 기억은 이미 지나간 시간입니다. 아니 기억은 통과의례를 잘 겪어낸 자기 영웅의 기억으로도 자리합니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라는 인식이 움트게 됩니다.
시어머니가 된 여성은 회고합니다. 살기가 팍팍해서 그랬지 시어머니 심성이 본디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고... 군대의 모진 신입시절을 겪은 병사가 신병이 들어오면 군기 잡기를 일상화하는 시절이 남성들에게도 있었습니다. 시집살이는 이와 유사한 구조를 가집니다. 시집살이를 경험한 여성은 과거를 보상받으려는 심리적 기제를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관계의 부메랑이라고 해야 할까요.
필자의 시조모는 성환에서 외동딸로 귀하게 자라다가 18세에 용인으로 시집왔다고 했습니다. 양가집 규수로 자랐습니다. 그분은 시집에 오고 보니 매끼 스무 명이 넘는 가족들의 끼니를 책임져야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일이 너무 고되어서 살을 씻다가 우물에서 쓰러지기도 했답니다. 게다가 작은 어머니를 시어머니로 모시고 살았고 그로 인하여 남편은 집 밖으로 떠돌았다고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자녀 교육이나 그 밖의 가정사는 모두 그녀의 몫이었습니다. 작은 어머니를 시어머니로 모시면서 그야말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시집살이 했다고 반복적으로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그분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모진 시집살이를 살아야만 했던 그분은 자기 며느리에게도 모진 시어머니가 되었습니다. 며느리에게 심한 욕설과 매질을 하여 며느리가 가출하는 사건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강진옥 선생님의 『정영엽 연구』에도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시어머니가 된 여성은 자신이 당한 고생을 또 다른 열등한 위치의 대상에게 전가하려는 심리적 기제를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 외조모는 상처한 남편에게 시집가서 그 집안의 정처로 인정받기 위해 처절하게 살아낸 분입니다. 그분은 시집에 오게 된 순간부터 늙은 시부모 병치레를 했고, 대가족들의 입 거리를 마련하느라, 베 짜는 노동을 하느라, 머슴들의 밥상을 차려내느라 힘겨운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그분의 기억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가혹하게 이어진, 밤낮없이 계속되는 노동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된 외조모께서는 함께 살던 며느리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 하나 마음에 들게 해낼 줄 모르는 며느리가 눈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직장 생활하는 막내며느리와 같이 살면서 일상생활을 하며 자주 의견 충돌을 벌이곤 했답니다. 모진 풍상 속에 자신의 입지를 획득한 시어머니 눈에 비치는 며느리의 모습은 미숙하고 미흡할 수밖에 없습니다.
열 닷살이나 먹어갓고
베질삼도 네못허고
바느질조차 네못허면
뒷동산에 왕대뿌리를
소구채를 갈아들고
광나루 너른땅에
사당에질이나 나가거라
모든 여성이 가혹한 시집살이를 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대부분 여성들은 시집가는 순간부터 낯선 시집의 문화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집안의 온갖 일을 도맡았습니다. 처한 상황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다른 시집살이를 살았습니다. 누구나 과도한 육체적 노동이라는 굴레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아들을 낳고 집안 내의 발언권을 행사할 만큼 나이 들어 어느 정도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시점에 되어서야 여성은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내며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시절 부르는 노래를 통해 며느리 시절 가슴속 담아둔 절절한 말들을 꺼내지기도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되어 부르는 시집살이 노래에는 젊은 날 고통스러웠던 경험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아이 시절 재미있게 따라 불렀던 노래는, 젊은 날 누가 들을까 혼자 숨죽여 불렀던 노래는 시어머니가 되어 과거를 회상하며 부르는 자기 서사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시집살이 노래는 생의 국면에 따라 유희적 노래로, 일탈과 저항의 노래로, 억압된 욕망을 해소하고 손상된 자아를 치유하는 내적 치유의 노래로, 고난을 겪고 난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자기 서사의 노래로 불렸다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다음 호에서는 여성 생애를 정리하는 노래의 기능에 대해 적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