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읊조리듯 탄식하며 부르다
백 년 전만 해도 여성은 열여섯 살 전후가 되면 결혼을 했습니다. 안동에 거주하셨다는 80세 이상의 여성(지금은 100세를 훌쩍 넘으셨겠네요)들의 제보를 보아도 그러하고 제가 20년 전 현장에서 만난 80대 이상의 여성들의 이야기도 그랬습니다. 보통 자신의 가족과 연줄이 있는 곳으로 시집을 가는 일이 흔했다고 합니다. 지역에 따라서 각기 다른 혼례 풍습에 따라 혼례를 치렀고, 혼례 당일날 바로 시가에 가거나, 사흘을 친정에 머물다 시가에 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시집살이 노래에는 시집을 온 지 삼일 만에 부엌에 나가는 경우가 자주 발견됩니다. 삼일 만에라는 관용적 표현이 정확하게 사흘인지 아니면 소위말하는 허니문 기간을 보장해 주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노래에서는 자주 그렇게 말합니다.
열다섯에 머리 얹어 열여섯에 시집가니
시집간후 사흘만에 일거리를 준다하니
들깨닷말 참깨낫말 볶아라고 내어주네
양가매를 볶고나니 양가매가 벌어졌네
구비대계 8-11 314면
시집간 지 사흘 만에 들깨 다섯 말과 참깨 다섯 말을 볶으라고 한 이 노래에서는 시부모가 벌어진 가마를 물어오라는 말이 이어집니다. 어린 며느리에게 이 사건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까요? 노래 속 며느리는 다행히도 당당하게 제 몸 값부터 물어달라고 반박을 합니다. 기회가 있다면 후에 전문을 소개하겠습니다.
안동대학교 민속학 연구소에서 발간한 <반속과 민속이 함께 살아가는 현리마을>이라는 책에서는 평민 여성의 일과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오전 4시에서 7시 보리방아 찧기, 물 긷기, 아침밥 준비와 식사
오전 7시부터 12시 물 긷기와 들일 혹은 밭일하기, 보리방아 찧기, 삼 째기, 나물 손질하기, 집안 청소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점심 준비 및 식사
오후 1시부터 오후 5시 들일 혹은 밭일하기, 빨래하기, 보리방아 찧기, 삼 째기, 나물 손질하기
오후 5시부터 7시 저녁밥 준비와 식사
오후 7시부터 잠자 전까지 삼 삼기, 삼베길쌈, 명 잣기, 무명길쌈, 바느질하기, 보리쌀 까불리기
농번기에는 모심기나 새참 하기가 추가되었고 7월과 8월에는 풀 썰기가 추가되었답니다. 명절을 앞두고는 옷을 만드는 일까지 겹치게 되면 사람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을 도맡게 되는 셈입니다. 부엌에서 불을 때면서도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었고 화장실을 가서도 졸았다고 하니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고된 노동이 며느리에게 주어졌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잠아잠아 오지마라
시어마니 눈에난다
시어마니 눈에나면
임의눈에 절로난다
임동권 한국민요집 1 123면
잠이 부족했던 상황은 노래를 통해서도 잘 나타납니다. 삼 삼느라 잠잘 시간이 없어서 화장실 주춧돌에 머리를 박고 잠들었다는 경험을 말하는 여성도 있습니다.
며느리 시절 여성은 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큰아기 시절 할머니에게서 배운 노래를 부엌에서 부지깽이 두드리며 몰래 불렀다고 하고 혼자 밭을 매러 가서 살살 불렀다고 하지만 며느리시절의 노래 부르기는 혼자 몰래 스스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불렸다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시어머니에게 욕설을 듣지 않기 위해 그렇게 숨죽이며 이 시기 여성은 견디어 냈습니다. 지역에 따라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었겠죠.
혼자 읊조리듯 몰래 노래를 부르면서 힘들게 일해도 밥 안주는 시집식구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노래 속 며느리처럼 당장이라도 집을 나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억울하고 분해서 도저히 못살겠다고 울부짖는 노래 속 며느리를 통해 제 심정을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누가 들을까 마음 졸이며 홀로 부른 노래가 가장 시집살이 노래다운 시집살이 노래라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