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틈과 경계

보여지는 몸, 말하지 못하는 주체

- 영화 <아노라>를 보고 -

by 틈과경계

여성의 육체는 어떻게 소비되는가

2024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아노라>는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여성의 삶을 섬세하게 다룬 영화라고들 말한다. 내가 본 영화<아노라>는 그렇지 못하다. 주인공 아노라의 반복적인 육체 노출, 그 방식과 맥락은 불편한 대상화로 느껴진다.

여성주의 영화이론, 라우라 멀비(Laura Mulvey)의 ‘남성적 응시’ 개념를 통해서 영화 <아노라>에서 여성 육체가 어떻게 재현되고, 어떻게 소비되는가를 얘기하고 싶다.


‘남성적 응시’와 아노라의 몸


1975년에 멀비는 「시각적 쾌락과 내러티브 영화(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ema)」에서 주류 영화가 남성 관객의 시선에 맞춰 여성 인물을 성적 대상으로 재현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여성은 이야기의 주체가 아니라, **남성 주체의 욕망을 위한 시각적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영화에서 아노라는 처음부터 스트리퍼로서의 성적 이미지로 등장하며, 영화 내내 그 육체는 카메라에 의해 반복적으로 재현된다. 이 장면들은 일상적이고 비극적인 맥락에서 제시되고 있지만, 동시에 시각적 쾌락을 유도하는 클로즈업과 노출 구도를 노골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이런 장면은 바로 멀비가 지적한 응시의 구조, 관객(남성)의 시선, 카메라, 대상화된 여성의 관계—를 반복하는 사례라고 보인다.


‘비판을 위한 재현’이라는 명분의 위선


다수의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사회비판적 영화로 말한다. 아무리 비판적 의도를 내세운다 해도, 관객은 아노라의 몸을 반복적으로 보게 된다. 여성 육체의 소비구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리얼리즘을 명분으로 한 선정성을 감춘 영화라고 말하고 다. ‘현실을 보여주는 것’과 ‘노출된 여성의 몸을 반복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것’ 사이에 과연 어떤 욕망도 작동하지 않았는가? 감정적 소통 없이 제시되는 육체, 고통과 수치심을 감정 없이 보여주는 연출이 오히려 관음증적 시선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벨 훅스(bell hooks)는 멀비의 이론이 백인 이성애 남성 시선에만 집중하며, 유색인종 여성, 주변 여성들의 시선과 위치를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아노라는 동유럽 출신 이민자 여성으로, 미국 내에서는 다중 차별의 위치에 놓인 존재였다. 그의 몸은 단순히 성적 대상이 아니라, 인종과 계급, 젠더가 교차하는 ‘사회적 표면’이었다.

영화를 본 관객으로서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단순한 예민함이나 민감함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작품이 재현의 윤리를 위반할 때, 또는 감정이 결여된 연출이 타인의 고통을 전시할 때 생길 수 있는 정당한 저항감이다. ‘보여주는 방식’은 결국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보다 더 큰 정치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아노라>는 사랑, 권력, 계급, 젠더를 교차시켜 사회적 긴장을 드러낸 영화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여성 육체의 반복적 재현, 특히 그것이 관객의 쾌락과 연결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면, 그 비판은 윤리적 기반을 상실하게 된다.


“여성의 몸을 통해 여성을 말한다는 것은, 그 몸을 다시 한 번 팔게 되는 일은 아닐까?”


영화적 재현은 곧 정치적 행위다. 그것이 예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 구조를 복제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아노라>가 말하고자 하는 것만큼이나,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의 시선으로 말하게 만드는가를 질문하는 일이 지금 나에게는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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