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틈과 경계

정상이란 무엇인가

- <노멀 우먼>에 관한 단상-

by 틈과경계

<노멀 우먼>(2024),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정상 여성’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겉보기에는 부유하고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여성 주인공 밀라가 갑작스러운 질병에 시달리며 자신의 신체와 존재에 대한 의문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가 <노멀 우먼>이다.


신체가 정상에서 벗어날 때, 사회적 지위와 젠더 정체성은 어떤 식으로 무너지고, 재구성되는가? 밀라(Milla)가 원인 불명의 이상 질병을 앓으며 존재 자체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의 ‘질병’이 신체적 이상이나 퇴화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가족, 사회적 기대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정체성 위기의 증후라는 점을 시사한다.


밀라는 ‘정상’이라는 허구 위에 쌓인 삶을 살아간다. 타인과 사회가 기대하는 부유층 여성, 아름다운 여성, 온전한 여성으로서의 몸은 언제나 평가되고 감시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정체불명의 질병은 이러한 '정상적 여성성'을 전복시키며, 그를 ‘타자화된 몸’으로 만든다. 피부의 이상, 피로, 인지의 왜곡 등은 단순한 병리학적 증상이 아니라, 그녀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치를 흔드는 요인이 된다.


정상 여성의 삶은 타인의 인정을 통해 반복 수행되며 고정된 실체가 아닌 ‘되기(becoming)’의 상태에 머문다고 쥬디스 버틀러는 말한 바 있다. 주인공의 몸이 병들고 기능을 잃으면서, 그녀의 젠더 수행은 중단되고, 여성으로서의 자격도 의심을 받는다. 사회는 더 이상 그녀를 '여성'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그 결과 그의 정체성은 붕괴된다.


질병으로 인해 신체가 점점 정상에서 벗어날 때, 관객은 더 이상 쾌락적으로 주인공을 바라볼 수 없다. 대신 그녀의 신체는 공포스럽고, 불쾌하며,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 불쾌함은 남성적 응시의 쾌감을 깨뜨리는 전복의 전략이라고 보인다.


병든 몸은 단순한 개인적 위기가 아니라, 사회적 불안의 상징이기도 하다. 부유층 여성인 주인공은 모든 것을 소유한 듯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은 남성 중심 사회와 부르주아적 가족 구조에 의존하고 있다. 질병은 이러한 구조적 기반을 흔들고, 여성 주체를 타자화시킨다. 그의 ‘이상함’은 사회의 불안으로 연결되며, 결국 남편과 의사, 가족은 그녀를 통제하려 한다.


이 장면에서 미셸 푸코의 ‘정상성/병리성’ 담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병든 여성은 시스템이 분류하고 격리하고자 하는 대상이며, 정상 여성이라는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되어야 할 존재로 변한다.


한편 밀라의 그의 증상과 질병은 실재하는 병이 아니라, 자가 면역 질환의 은유적 반복이고, “외부와 내면이 맞닿지 않는 삶의 불균형”을 신체적 증상으로 전사한 것으로도 보인다. 밀라의 얼굴에 펴지는 발진, 코피, 혈흔, 정신분열적 환각은 육체와 정신이 폭발 직전에 있다는 신호다. 밀라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사회가 여성에게 부과한 완벽성 기준에 의해 형성된 고통의 신체화로 읽을 수 있다.


여성의 몸은 사회적 정체성과 분리될 수 있을까. 그에게 찾아온 질병은 가족과 사회에 자신이 받아들여질 수 없다는 타자의 시선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 질병은 그 타자의 시선을 넘어서 ‘진짜 나’를 찾기 위한 기제로 기능한다. 외부에서 획득된 정체성이 내부로부터 폭발하는 진정한 자아를 통해 전환되는 전복적 순간이 된다.


밀라는 사회적으로 완벽한 품위와 신뢰를 지닌 인물로 보이지만 이러한 삶은 시어머니와 남편, 사회적 계층에 의해 구축된 이상이었다. 그는 끊임없이 ‘타인의 기대’를 위해 몸을 맞췄던 여성이었다. 그 억압의 계보가 밀라가 겪는 질병의 내적 원인이라고 보인다.


영화는 몸의 증상에 집중한 미장센-피부 발진의 클로즈업, 자해적 상처, 붉은 혈흔-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여성의 몸을 시각적 소비 대상처럼 구성하는 동시에, 정체성이 붕괴하는 과정을 관객에게 체험하게 만든다.


자유는 혼란을 동반한다. 여성은 언제 자신의 몸을 자기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정체성 붕괴와 육체의 폭력적 변형은 불편하지만, 역설적으로 진정한 자기 해방이 시작된다. 영화는 ‘정상 여성’이라는 신화가 어떻게 구축되며, 그 신화가 깨졌을 때 어떤 억압과 해방이 동시에 나타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노멀’은 정답이 아니며, ‘노멀’ 바깥에도 인간의 진실한 서사가 존재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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